신작시

호일당 주인이시여, 평안히 가시옵소서/ 임보

운수재 2015. 4. 1. 09:00

 

호일당 주인이시여, 평안히 가시옵소서

수연 박희진 시인 영전에

                                                               임 보

 

수연 선생이여,

꽃 피는 봄날 그렇게 훌쩍 떠나시는군요

백발도 성성한 신선 같은 그 풍모

이젠 다시 뵈올 수 없게 되었다니

 

물처럼 맑고

대처럼 곧고

솔처럼 푸르고

쇠처럼 강직하신

호일당(好日堂)의 주인 수연(水然)이시여

 

당신께서는 한평생 시를 위해 사신

시의 사도이며 시의 성직자셨습니다

수연이 걸으신 시의 발자취는 눈부십니다

4행시, 1행시, 17자시, 13행시

소나무시, 섬의 시, 자연시, 기행시

수많은 시의 형식들을 빌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노래했습니다

그리하여

1960실내악에서 2014영통의 기쁨에 이르기까지

무려 35권의 시집을 남겼습니다

생전에 당신은 스스로를 자평하시길

시의 9이라 일컬으셨는데

당신은 9단을 넘어 시의 국수(國手)십니다

 

이제 번거로운 세상일 다 떨치시고

평안한 마음으로 천상에 오르소서

그 나라에 가셔서도

시의 집을 짓고

시의 옷을 입고

시의 성을 쌓고

시로 만든 음식 시로 빚은 술 드시면서

당신이 좋아하는 시의 친구들과 더불어

영원한 시의 공화국을 이룩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