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아직은/ 임보

운수재 2015. 10. 21. 12:40

 


아직은

                                       임보

 

 

10년 신은 내 등산화

굽이 다 닳고 창은 헐었지만

내 발에 잘 맞아 허드렛 신발로

아직은 신을 만하다

 

20년 가까이 된 내 윤마(輪馬)

자잘한 외상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어도

내 몸 태우기에 힘 부치지 않으니

아직은 버릴 생각 없다

 

40년 넘게 정들여 산 내 우거(寓居)

이젠 벽도 헐고 관도 새기는 하지만

손수 심은 화초들 뜰에 무성하니

아직은 옮겨 가고 싶지 않다

 

50년 넘게 몸 맞대고 지낸 조강지처

백발 주름에 성깔도 거세졌지만

먹을 것 입을 것 꼼꼼히 챙겨 주니

어디 아프다면 덜꺽 겁이 난다

 

80년 가까이 나를 지탱해 준 이 몸

허리는 굽고 치아는 다 빠져 만신창이지만

홍어무침에 매실주 생각 못 잊어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