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스크랩] [仙詩] 집 / 임보

운수재 2016. 9. 23. 06:55

 


                                   임보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천연의 동굴에 들어가 살기도 하고

큰 바위 밑이나 고목 아래

의지해 지내기도 한다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있고

부신 햇볕을 가릴 수 있으면 되니

그들의 집이란 움막이나 원두막 수준이다

 

한 곳에 붙박여 사는 이들은 드물고

살다가 싫증이 나면 자리를 옮긴다

운수행각(雲水行脚)!

구름과 물처럼 떠도는 삶이다

그러니 살림도 가구도 거의 없다

쓰던 것을 그냥 두고 떠나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이어서 쓴다

 

특별히 살기 좋은 고장이 아닌 이상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는 경우가

흔치 않다

 

그런데도

떠돌기를 귀찮게 여겨

수백 년을 한 곳에 머물러 지내는

게으른 자들도 더러는 있다

 

 

  *<불교문예>2016. 가을호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메모 : 선시집 <구름 위의 다락마을>의 증보판을 위한 연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