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스크랩] 먹꽃 / 임보

운수재 2016. 10. 23. 08:10

 


먹꽃

                                                                 임보 

 


유화를 그린 친구의 화실에 갔더니

붓이 갔던 자리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위에 다시 그리고

그래도 마음에 안 차면 그 위에 또다시 칠하고

덕지덕지 물감에 물감을 칠해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시를 쓰는 시인도 마찬가지다

골라잡은 말이 마음에 못 미치면 다른 놈으로 바꾸고

그래도 흡족치 않으면 또 다른 놈으로 바꾸고

한 편의 시가 수많은 퇴고로 너덜너덜 얼룩진 상처다

 

요즘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또한 그렇다

한 곡의 노래를 수백 번 반복하여 녹음한 다음

최선의 부분들만을 골라 짜집기해

한 장의 음반으로 만들어낸다지 않던가?

 

그런데, 옛 선비들의 문인화는 어떠했던가?

한번 지나간 자리에 붓이 다시 가지 않았다

일필휘지(一筆揮之)칼처럼 서늘한 문기(文氣)!

눈밭보다 하얀 화선지에 먹꽃이 피었다!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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