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스크랩] 나무 ---산상문답3 / 임보
운수재
2017. 1. 11. 08:36
나무
―산상문답․3
임보
[물음]
스승님,
눈도 코도 없이
한평생 한 곳에 붙박여 사는
저 나무들은 얼마나 어둡고 답답할는지요?
[대답]
네 눈이 천 리를 보고
네 귀가 백 리를 듣는다고 치자
그러나 저 허허한 우주의 다락에서 내려다보면
네가 거느린 세상도 좁고 좁다
네가 한 마리 개미의 더듬이를 우습게보듯이
만 리의 더듬이를 가진 자가 너를 본다면
네 눈과 귀 또한 얼마나 가소롭겠느냐?
그러나 생명의 의미는
더듬이의 길이로 측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눈을 지닌 자는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귀를 가진 자는 들리는 것에 마음을 기울인다
만 리를 보는 자는 만 리의 근심을 안게 되고
천 리를 듣는 자는 천 리의 걱정을 지게 된다
보도 듣도 못한 한 그루 측백나무가
천 년을 사는 것을 너는 아직 못 보았느냐?
그들에겐 근심이 적다
어둡고 답답하리라 염려하지 말라
움직이지 않으니 더듬이가 무슨 소용일까
그러나 그들도 필요한 건 몸으로 다 안다
우리는 눈 귀 닫으면 온 세상이 어둡지만
그들의 몸은 늘 열려 있어서
어둠의 밤이나 폭풍의 낮이나
언제나 한결같이 밝다
무엇으로 그것을 아느냐고?
보라, 햇빛을 만나면 잎을 열고
봄이 오면 꽃을 피우지 않더냐
그들이 왜 답답하단 말이냐.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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