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시선

[스크랩] 난경 / 임보

운수재 2017. 3. 29. 08:55

 

 

난경(難經)

                                                             임보

 


창공에도 길은 있다

천만 성군(星群)들이 무리 지어 가는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새들도 날개를 퍼덕이어 지상(地上)을 박차지만

그들이 만난 것은 언제나 추락일 뿐

허공에 띄운 사람들의 철새[鐵鳥]들도

끝내는 불꽃으로 타고 만다

 

바다에도 길은 있다

헤엄치는 물고기 떼들이

그것을 일러준다, 하지만

사람들이 세운 돛은

매번 떠났던 자리로 되돌아 올 뿐

마지막 도달한 곳은 결국

좌초에 지나지 않는다

 

날개도 지느러미도 아닌

우리들의 두 다리가 걸을 곳은

어차피 이 지상(地上)이지만

그러나 난마(亂麻)처럼 천만 갈래로 얽히고 찢긴

저 산야(山野)의 길들

그것은 욕망과 좌절의 흔적들일 뿐

아직 하나의 길도 트이지 않았다

 

사막에도 길은 있다

약대를 끌고 서역(西域)으로 가는 무리들을 보라

길은 있는데

모래 속에 묻혀 있는 하나의 길은 있는데

앞서 간 자들의 발자국이 그것을 오히려 어지럽힌다

그래서 바람은 묵은 발자국들을

모래 속에 다시 묻고

마지막 한 사람

그대가 오기를 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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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보의 잠언시집 [산상문답]에서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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