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삶
임보 / 林步
지난 연말 무렵이었다. 시(詩)와의 인연으로 만난 시우(詩友)들의 조촐한 모임을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갖게 되었다. 그날 연회의 첫머리에 하게 되는 건배사가 내게 맡겨졌다. 요즘 항간에는 재미있는 건배사들이 많아 주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일상 애용하는 건배사는 재미는 없지만 짧아서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내가 “건강하게!”라고 선창하면 좌중이 “삽시다!”라고 제창하고, 또 내가 “즐겁게!”라고 선창하면 또 좌중이 “삽시다!”라고 제창하고, 마지막으로 “아름답게”라고 선창하면 “삽시다!”라고 제창하면 끝이다. ‘건강하고 즐겁고 아름답게 살자’는 기원을 담은 짧은 메시지다.
그런데 술잔이 한참 오고가다 한 시우가 이 건배사에 얽힌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자기 집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건배사를 했더니, 초등학교 3학년짜리 손자 녀석이 질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어린 손자가 ‘아름답게 사는 것이 뭐냐?’고 물었는데, 그 대답이 선뜻 쉽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그 얘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아름답게 산다’는 말이 그 아이에겐 꽤 어려운 말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건배사는 글을 쓰는 문우들을 상대로 한 것이므로 ‘아름답게 살자’의 의미는 ‘좋은 작품을 쓰자’ 즉 ‘창조적인 삶을 살자’는 뜻으로 한 말이지만 글을 쓰는 삶만이 ‘아름답게 사는’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삶들이 아름다운 삶일까?
세상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삶보다도 남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낙후된 오지를 찾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하는 의료인들,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봉사자들, 또한 사회를 위해서 적잖은 헌금을 희사하는 이들, 자신의 재능을 필요로 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이들도 많은데 이러한 삶들이 다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도 아름답지만,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도 아름답다. 양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땀을 흘리는 농부의 삶도 아름답고, 싱싱한 해산물을 얻기 위해 새벽 일찍 배를 띄우는 어부의 삶도 아름답다. 거리를 깨끗이 치우는 청소부의 삶도 아름답고, 빈 박스를 거두어 리어카에 싣고 가는 노인의 삶도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이라면 아름답지 않는 삶이 없는 것도 같다.
사람들의 삶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생명들의 삶은 다 아름답다. 짐승들의 어린 새끼들은 얼마나 귀엽고 아름다운가? 비록 맹수라 할지라도 새끼들을 돌보는 그들의 모성애는 얼마나 갸륵하고 아름다운가? 날개를 지닌 날짐승들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의 유연한 비상―떼를 지어 날아가는 군무를 보면 얼마나 마음이 시원한가? 아니, 미물인 곤충들도 아름답다. 화사한 날개를 가진 나비는 말할 것도 없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치며 귀뚜라미 같은 곤충들도 다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동물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식물도 아름답다. 그들이 피운 꽃의 아름다움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갖가지 잎이며 가지도 아름답다. 우람한 거목은 거목대로, 고목은 고목대로 멋과 운치를 지니고 있다. 아니, 하찮은 한해살이 풀― 민들레나 제비꽃들도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다 아름답게 살아간다. 아름답지 않은 생명체는 하나도 없다!
‘아름답게 사는 삶’이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주어진 분수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인 것 같다.
그렇기는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짜리 손자에게 ‘아름다운 삶’을‘성실하게 사는 삶’이라고 일러주면 이해를 할까? 어렵기는 마찬가지― 별로 설득력을 지닌 대답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뭐라고 해야 할까? ‘칭찬 받는 삶’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시원찮다. ‘아름다운 삶’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 어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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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21, 2021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