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의 산문들/수필

삼탄역장 / 임보

운수재 2006. 3. 11. 10:21


삼탄역장(三灘驛長)



1992년 늦은 봄으로 기억된다. 학생들과 함께 삼탄으로 M.T.를 갔던 적이 있다.
삼탄은 충주와 제천 사이에 있는 깊숙한 산골이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맑은 여울이 산의 굽이굽이를 감돌아 흐르고 있었다.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진 청정한 자연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울가의 민가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지낸 뒤 이른 아침 일찍 물을 따라 산책을 나갔다.
아침 안개에 골짜기는 그윽이 잠겨 있었는데 강 위에는 작은 쪽배를 타고 그물을 걷고 있는 어부(?)도 보였다.
가끔 그물에는 은빛 고기비늘이 눈부시게 드러나 보이기도 했다.
다리를 건너자 강가에 작은 역사(驛舍)가 자리하고 있었다.
전날 오후 화물열차가 더러 골짝의 구릉을 뚫고 달리는 것을 보기는 하였으나
이곳에 역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른 아침의 조촐한 역사는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슬 맞은 다람쥐가 빈 대합실의 문턱에서 기웃거리고
이름 모를 멧새들이 선로변에 주저앉아 조잘거리고 있었다.
세상은 천국처럼 평화롭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 문득 이러한 자연 속에서 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역장의 삶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이러한 삶이야말로 매일 아귀다툼의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는 얼마나 동경스런 삶이겠는가.
그때 내 머리 속엔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의 저 유명한 시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가 떠올랐다.
산 속에 숨어사는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는 노래다.

    松下問童子>> 소나무 아래서 노는 동자에게 물었더니
    言師採藥去>> 스승은 산에 약초 캐러 가셨다고 이르네
    只在此山中>> 있기야 이 산중 어딘가에 있겠지만
    雲深不知處>> 구름이 너무 깊어 찾을 길이 없네 그려.

이윽고 나는 이 작품 속의 은자(隱者)와 역장(驛長)을 하나로 묶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한 이상적인 인물을 형상화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삼탄역장>이라는 작품이다.

    산이 산들을 업고 겹겹이 누운/ 깊은 산골 삼탄역 빈 대합실/
    다람쥐 한 놈 기웃거리고 있다/ 역 앞은 푸른 계곡/
    여울 소리만이 가득할 뿐/ 가끔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거대한 공룡의 유령처럼/ 산허리를 뚫고 지나갈 뿐/
    이 산골에 내리는 사람은 없어/ 역장은 늘 역사에 없다/
    열 대여섯 되는 동자놈 하나/ 여울에 그물을 던져/
    제 팔목만한 치리를 끌어올리기에/ 그가 어디 있는가고 물었더니/
    감자밭에 없으면/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갔으리라 한다/
    여울엔 푸른 오동꽃이 떨어져/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 * 치리: 물고기의 일종

그런데 이 작품이 얼마 전 어느 신문의 기획특집 <충청도를 노래한 시>로 세상에 다시 발표되자 문제를 불러왔다.
철도청의 감독기관이 이 작품을 읽고 삼탄역장에게 문책을 한 것이다.
역장이 역사는 지키지 않고 고사리나 꺾으러 다니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혼비백산한 역장은 작자인 나에게 항의의 전화를 걸다 못해 드디어는 찾아오기까지 했다.
내용인즉 자기는 30여 년 동안을 성실하게 근무해 온 모범 공무원인데
내 작품으로 하여 어떠한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르니 해명을 해 달라는 것이다.
현실과 작품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더니 그도 인정은 하면서도
상급기관의 오해를 풀지 못할까 봐 몹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사실 이 작품을 감독기관에서 잘못 읽고 만일 역장이 불이익을 당한다면 나에게도 책임이 없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역장의 요구대로 그의 상급기관에 전화를 걸어 작품의 내용과 현실이 무관하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약간은 우리 사회의 문학작품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아쉬워하면서―.

현실의 세계와 작품의 세계는 다르다.
물론 현실이 작품의 소재가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이 부분적으로 작품 속에 드러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작품의 세계는 현실의 재구성을 통해서 형상화된 것이므로 현실 그 자체가 아닌 가공의 세계다.
문학작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소망의 기록이다.
작자가 꿈꾸고 있는 바람직한 세계를 향한 기록이다.

<삼탄역장>은 내 꿈의 기록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속세를 등지고 유유자적 여유롭게 살고자 하는 내 소망이
삼탄역장이라고 하는 한 인물을 통해 형상화된 것일 뿐 현실과는 전혀 다르다.
실제의 현실은 어떠한가.
역장과 점심을 나누면서 들은 얘기로는 삼탄역장은 그렇게 한가로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열차와 승객들을 온종일 맞아야 하는 고된 역무에 시달려야만 하는 자리라고 한다.
더욱이 그 맑던 삼탄의 여울이 이제는 오염이 되어 물고기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부서지는 내 꿈의 아픔을 누를 길이 없다.
아무튼 아름다운 내 꿈의 기록인 <삼탄역장>이 잘못 읽혀 실제의 삼탄역장이 혹 잘못 이해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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