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어서 나를 / 임보
운수재
2006. 4. 10. 06:59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5] / 임보
어서 나를
님이여 어서 들어오세요
들어와 내 안에 깊이 묻히세요
깊이 묻혀 나를 녹이세요
공복의 위장 속에서 아편이 풀리듯
아침 햇살에 눈덩이 녹듯
혀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박하사탕처럼
혈관 속을 파고드는 화주(火酒)처럼
어서 나를 무너뜨리세요.
가마솥에 불을 지펴 열탕을 끓이듯
어서 나를 끓이세요
어서 나를 증발케 하세요
어서 나를 태우세요
사라지고 싶어라
한 줄기 연기처럼
한 가닥 바람처럼
그대 영혼 속에 스며 적멸(寂滅)하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