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 강좌

[시창작강좌 53] 현대시의 텐션 / 임보

운수재 2006. 7. 3. 07:19



[제53신]


현대시의 텐션  /    임보



로메다 님,
지난주엔 백담사 <만해 마을>에서 문학 행사가 있어 참석했다가 낙산사를 찾았습니다.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흔적이 처참해 보였습니다.
대웅전을 비롯해서 수많은 요사채들이 연기로 사라져 버렸는데
다행히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한 의상대와 홍련암만이 가까스로 남아있었습니다.
절의 재건을 위해 수많은 불자들이 줄을 이어 시주하는 모습이 참 숙연했습니다.

로메다 님,
오늘은 현대시의 텐션의 이론에 관해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텐션(tension)이라는 용어는 신비평의 이론가인 A. Tate가 현대시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만들어 낸 말입니다.
논리학 용어인 외연(extension)과 내포(intension)라는 단어에서 접두사 ex와 in을 제거하고 장난삼아 만든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긴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말이 신비평가들의 구미에 맞았든지 즐겨들 사용해 왔습니다.

테이트는 좋은 시의 의미 구조를
"그 '긴장 관계', 즉 그 시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외연과 내포의 총체적인 조직체"
('tension', the full organized body of all extension and intension that we can find in it.―Tension in Poetry)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논리학에서 '외연(外延)'은 '주어진 개념이 지시하는 사물의 적용 범위'라고 정의됩니다.
즉 대상의 특정한 종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포(內包)'는 '어떤 사물이 지니고 있는 추상적 속성의 집합'이라고 규정됩니다.
외연의 대상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성질입니다.
예로서 '금속'과 '동물'의 외연과 내포를 들춰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속--[외연]: 금, 은, 동, 철 등--------------구체적 사물
    [내포]: 견고성, 불변성, 중량성 등-------추상적 성질
    동물--[외연]: 소, 말, 개, 돼지 등-------------구체적 사물
    [내포]: 생명성, 가동성, 식성 등---------추상적 성질

만일 '코뿔소는 금속의 동물'이라는 시구가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코뿔소'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금속'과 '동물'의 여러 외연과 내포들의 결합에서 형성됩니다.
금속의 한 외연인 '금'이 동물의 외연이나 내포에 결합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금+소, 금+말, 금+개, 금+돼지… 그리고 금+생명성, 금+가동성, 금+식성 등으로 결합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물이 지닌 여러 종류의 외연과 내포들이 다른 한 사물이 지닌 여러 종류의 외연, 내포들과 만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경우는 무궁무진합니다.
여기에 '코뿔소'라는 사물이 지닌 외연과 내포들까지 관여를 하게 되면 그 의미망은 얼마나 복잡하게 펼쳐질 것입니까?
세 개의 명사로 이루어진 단순한 한 구절도 이렇게 복잡하거늘 수십 수백 개의 시어로 이루어진 한 편의 작품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다음의 예문을 보기로 합시다.
'코뿔소는 코에 뿔을 가진 동물이다.'
이 문장은 앞의 예문보다도 어휘의 수효는 더 많습니다.
즉 '코' '뿔'이라는 두 개의 명사와 '가진'이라는 동사가 '동물'과 결합하여 의미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빚어내는 이미지의 폭 곧 의미망은 단순합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사실에 대한 기술이니까, 우리의 의식 속에서 외연과 내포들이 우리의 체험 내용에 맞게 자동으로 결합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테이트는 시를 관념이나 사상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를 전달의 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외연의 결합만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의미망의 구조가 보다 능률적일 지 모릅니다.
그러나 테이트는 시를 도구가 아닌 하나의 사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시를 '내포와 외연의 가장 먼 양극에서 모든 의미를 통일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이상적인 텐션이란 보다 넓고 큰 입체적인 의미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텐션은 외연과 내포의 폭이 넓은 시어들 사이에서 효율적으로 생성됩니다.
또한 앞의 첫 예문에서의 '금속'과 '동물'처럼 이질적인 사물들 곧 낯선 대상들과의 결합에서 능률적으로 형성됩니다.
친숙한 사물들의 결합은 일상의 재현에 그치고 말 염려가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텐션의 폭은 줄어들고 맙니다.
두 번째의 예문이 이에 해당합니다.
테이트의 텐션의 이론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나 리차즈의 '포괄의 시(inclusive poetry)' 곧 모순 충돌의 갈등을 일으키는 체험 내용들을 포괄 종합해야 한다는 이론과도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테이트나 리차즈의 견해처럼 현대시의 이상적인 구조를 그렇게 복잡다단한 복합구조로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이러한 이론을 도출하게 된 것은 현대인의 심리적인 갈등에 근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복잡다단한 도시문명 속에서 모순 충돌의 심리적 갈등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내면 세계를 표출해내는 방법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를 심리적인 배설 행위로만 생각하지 않고, 정서 정화의 한 수단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생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의미의 폭이나 이미지들의 집합이 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작품 속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즐거움이며, 위안이며,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작품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기보다는 질에 의해 좌우됩니다.
복잡한 선과 색채로 화폭을 가득 메운 그림이 반드시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단순한 선과 색채로 이루어진 수묵화도 감동적인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나는 작품의 질― 이상적인 구조를 '텐션'이라는 말보다는 좀 낡기는 했지만 '조화'라는 말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로메다 님,
오늘의 얘기도 좀 딱딱했지요?
봄꽃들을 보면서 굳은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