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자연학교
가출 / 임보
운수재
2006. 7. 4. 12:51
가출(家出)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 들러
토인(土人) 여자를 하나 얻었다
반짝이는 짱구 이마
진홍의 나팔꽃 입술
소라 고동의 희고 검은 눈
작은 어깨에 앙상한 팔과 다리
비가(悲歌)의 화석(化石)같은 흑단(黑檀)의 여인이다
그 여인을 내 머리맡에 놓아두고
아침저녁으로 쓰다듬고 다니는데
어느 날 밖에서 돌아와 봤더니
그만 없어지고 말았다
어이된 영문인가 알아보니
아내의 등쌀에 못 배겨
과천(果川)의 딸년 집으로 쫓겨간 것이다
1993년 여름 대전 엑스포
아프리카 공동관에 들렀다 만난
어느 가난한 흑인 조각가가 새긴
흑단의 슬픈 토인 여자
그 목각(木刻) 인형 여인이
살아 있는 내 아내에게 떼밀려
그만 가출(家出)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