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 임보
내가 아직 어머니의 몸속에 있었을 때
아버지는 스물둘의 푸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가난을 탓하다 죽창에 찔려 비명에 갔다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의 혼을 붙들어 매려고
얼굴에 체를 씌워 땅에 묻었다
내 나이 열둘에 어머니도 갔다
열두 해 홀로 버티다가 더는 못 참아
육신이 뼈만 남아 떠나갔는데
어린 내 손을 붙들고 이르기를
애비의 무덤을 헐고 체를 벗겨
당신의 몸과 함께 다시 묻으라 했다
그러나 그 마을의 풍습은
헌 송장과 새 송장은 함께 거두지 않는다 해서
그들은 떨어져 묻히고 말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버린 뒤
나는 조선 팔도를 무릎이 헐도록 굴러다녔다
부잣집 머슴살이
대장간의 풀무질
부둣가 하역질로 떠돌면서
돈을 모으면 고향에 돌아가
어미의 한을 풀겠노라 했다
세월은 흘러 흘러 무정히 흘러
고향을 등진 지 30년 만에
나는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다
봉고차에 두 아들과 아내를 싣고
늦기는 했지만 의기양양 되돌아왔다
그러나 낯선 골목 무너진 담장들 안엔
생소한 얼굴들만 기웃거릴 뿐
내 귀향을 알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숲에 묻혀 폐허가 되어 버린
두 무덤을 찾아 하나로 묶었다
애비의 영혼을 붙들어 맨 체는 어디로 갔는가
갇힌 혼백의 몸에 닳고 닳아 다 무너져 내렸는가
당신의 몸에 창을 꽂은 자가 누구인가
당신의 얼굴에 체를 씌운 자가 누구인가
그들도 이제는 백골로 돌아가 깊이 잠들었으리
나는 허공에 삽을 지르며
사자의 포효처럼 으르렁거리며 웃어 본다.
* 체 : 비명에 간 망자의 얼굴에 체를 씌우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원혼이 지상을 떠돌며 살아있는 자들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원혼이 무덤에서 못 빠져나오게 하는 방패다. 무덤 속의 혼이 빠져나오려고 체 구멍을 헤아리며 돌다가 그만 지쳐 주저앉고 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