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가 민들레씨에게 민들레가 민들레씨에게 / 임보 아들아 바람이 오거든 날아라 아직 여린 날개이기는 하지만 주저하지 말고 활짝 펴서 힘차게 날아라 이 어미가 뿌리내린 거치른 땅을 미련없이 버리고 멀리 멀리 날아가거라 그러나 남풍에는 현혹되지 말라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부드럽고 따스하지만 너를 차가운 .. 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2009.02.02
구천동 소식 2 구천동 소식․2/ 임보 태허 선사가 서울 오던 날 무교동 어느 해장국 집에서 구천동 소식을 물었더니 그가 메고 온 바랑 속에서 꽃가지 하나 꺼내들고 내 코 앞에 버럭 디밀어 구천동 냄새를 맡아 보라 한다. 조화 같기도 하고 생화 같기도 한 시든 꽃가지에 코를 대고 구천동을 보려했더니 구천동도 모.. 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2009.02.01
구천동 소식 1 구천동 소식․1/ 임보 우이산(牛耳山) 골짜기에서 한나절 반쯤 더 걸어 산 속으로 휘어들면 장정 다리통만큼씩 자란 엄나무 숲이 한 둬 마장쯤 늘어서들 있는데, 어떤 놈은 절문 앞에 눈을 부라리고 서 있는 사천왕 팔목 같기도 하고 어떤 놈은 갑옷 투구에 철퇴를 든 장수의 등짝 같기도 한 놈들이 즐.. 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2009.01.31
식구 식구/ 임보 청운산장 오르는 중턱쯤에 <샘터>라는 곳이 있는데 우물가에 포장 한 간 치고 물과 바람이나 마시고 사는 한 노파가 있는데 그 집 볕 밝은 뜰엔(뜰도 산이지만) 사람으로 치면 열네댓쯤 먹어 뵈는 토종 황구(黃狗) 한 마리와 또 사람으로 치면 예닐곱쯤 먹어 뵈는 어리디 어린 새끼 고양.. 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2009.01.30
먹보 부부 먹보 부부/ 임보 우리 동네 연탄 가게 젊은 아주머니는 힘도 장사여서 구공탄을 한 번에 여덟 개씩 잘도 나르는데, 이 여인네가 연탄 무더기 곁에 서면 에미 곁에 강아지 새끼들 모여들 듯 그렇게 검은 연탄들이 매달려 대롱이는데, 온종일 그 검은 새끼들 북새통에 그 희고 도톰한 얼굴이 벗겨질 날이 .. 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2009.01.29
석천동 일기 석천동(石川洞) 일기 / 임보 지난 한로(寒露) 다음 휴일이었다. 돌에 미친 몇 사람들이 충북 석천동 골짜기를 찾아갔었는데 병풍산 구비구비 맑은 강가에 돌들은 벌써 다 숨어버리고 진달래 붉은 단풍만 강물을 태우고 있었다. 강가의 빈 집 마당에는 옥수수패들이 떼로 모여 노란 이를 통째로 드러내 .. 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2009.01.27
눈 눈 임보 솜털처럼 고운 눈이 한나절쯤 내렸을 때 세상은 온통 환희의 축복 속에 잠긴 듯했다. 앙상했던 마른 나뭇가지, 무딘 장독대, 거칠었던 지붕들이 흰꽃 너울을 쓰고 생명을 지닌 것들보다도 더 맑고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린 아이들은 개들과 뒹굴면서 눈사람을 만들고 평소 이지.. 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2009.01.24
설경 5 설경(雪景)․5 / 임보 ―들새 세상이 열두 자의 눈 속에 깊이 묻혔을 때 길 잃은 한 마리 들새 초승달―찢어진 하늘 구멍을 향해 한 둬 마장쯤 날아 오르다 달빛에 날개가 닳아 눈 속에 추락해 내렸다 그리고 세상과 하나가 되었다. 임보시집들/날아가는 은빛 연못 2009.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