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의 뿔 황소의 뿔/ 임보 애초에 우리들은 바다를 지키는 순진한 수병들이었다 망대에서 바다를 감시하거나 정찰선을 타고 가끔 바다를 순양하는 일 외에는 해안의 언덕 위에 한가롭게 자리한 우리들의 기지, 그 녹색이 막사에서 종일 딩굴며 지내는 것이 우리들의 일과였다. 우리들의 막사에서 한 마장쯤 떨..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20
젊음에게 젊음에게/ 임보 젊음이여, 그대들은 싱그러운 향기다. 아직 덜 익은 과일의 팽팽한 그 신선을 가득 담고 있다. 5월의 신록보다 향그러운 그대들의 살결, 그 밑에는 억만 년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담긴 붉은 동맥이 강물로 흐르는…… 그대들은 이 역사의 새로운 물결이다. 이 세상의 아침이다. 젊음이여..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18
분노의 바다 분노의 바다/ 임보 하나의 여린 빗방울이 뜨겁게 단 아스팔트 포도 위에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얼마나 순식간에 기화해 가는가? 우리는 그것을 보고 물방울은 약하다고 갈대보다 더 연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그릇된 생각인가를 한여름의 소나기를 맞으며 우리는 뉘우치게 된..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15
된소리 세상 된소리 세상/ 임보 1960년대 초 일석(一石)* 선생이 「文法」시간에 ‘문뻡’을 ‘문법’으로 발음한다고 우리들은 웃어댔다. 선생께서는 임(壬)․병(丙)․양란(兩亂) 뒤 세상이 급박해지면서 ‘갈(刀)’이 ‘칼’, ‘곶’,이 ‘꽃’등 된소리로 많이 변해 갔다고 빈정대셨다. 1980년대 말 요즈음 학생들 ..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14
황소 황소/ 임보 나는 소입니다. 뿔을 두 개나 가진 황소입니다. 내가 한 살 넘던 가을, 당신들은 내 코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코뚜레로 나를 얽었습니다. 밭을 갈았지요. 무논도 열심히 갈았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또 우리들의 젖을 빼앗아 갔습니다. 내 새끼들의 목을 적실 그 피나는 젖을 매일 아..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13
사천리 사람들 사천리(沙川里) 사람들/ 임보 사천리 사람들은 독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약간 좀 미쳐 갔습니다. 닭을 기르는 사람들은 계사 천장에 밤새도록 전등불을 켜놓고 닭들을 깨웠지요. 그리하여 하루에 2개씩 달걀을 만들어내도록 밤을 몰아냈습니다. 비닐하우스를 만들었지요. 잠든 씨앗들을 열심히 깨워 ..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11
후은시 후은시(後隱詩)/ 임보 후은(後隱)은 내 조부의 아호다. 그가 인제(麟蹄)를 떠나 석곡(石谷) 등구(登龜)의 대나무 숲 속에 자리를 잡고 농로(農老)로 그렇게 한 세상을 마친 것이 무슨 뜻이었는지 댓 살 적부터 그분 사랑에서 글자를 익히며 살아온 나는 서울 유학을 마칠 때까지도 통 알 수가 없었다. 아..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09
거미 거미/ 임보 어느 날 내 책상머리에 놓인 분매(盆梅)에 물을 주려다가 그 낮은 가지에 줄을 늘이고 있는 들깨씨보다도 작은 거미를 보았다. 그 작은 놈이 어떻게 생겨나서 무엇을 잡겠다고 이 방 안 매화가지에 그물을 치는 것인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참 잊고 지내다 며칠 뒤 분에 물을 주면서 그놈..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06
난초꽃을 보다가 난초꽃을 보다가/ 임보 소심(素心)이 참 오랜만에 뒤 송이 흰 꽃을 밀어 올리기에 창가에 올려 두고 만지며 보았는데, 그 진한 향으로 종일 방을 흔들어 제법 시끄럽게 했다. 그렇게 하기를 한 열흘쯤 했을까 문득 어느 아침에 녀석의 목이 쉬어 있음을 보았다. 그 쉰 목소리가 창에 붙박힌 방충망에 걸..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05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어떻게 될까?/ 임보 미쓰 김 너와 사랑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너와 사랑에 빠져 남해 매몰도쯤에 가서 한 보름쯤 박혀 있으면 어떻게 될까? 아내는 제 것을 뺏겼다고 아우성을 칠까? 제자들은 딸 같은 처녀와 달아난 교수에게 저주를 할까? 그러면 미쓰 김 아무도 몰래 한 반 년쯤 그렇게 푹 .. 임보시집들/황소의 뿔 2009.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