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의 산문들 132

'스님'의 호칭에 관하여

‘스님’의 호칭에 관하여 임 보(林步) 일찍이 만해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했지만, 근래 ‘님’을 붙여 대상을 높이고자 하는 어법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해님’ ‘달님’ ‘별님’ 등 천체의 이름에 붙이기도 하고, 상대방의 자녀를 높여 ‘아드님’ ‘따님’이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이러다간 상대방의 애완동물을 지칭할 때도 님이 등장하는 날이 혹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요즘 승려가 자신의 법명(法名) 뒤에 ‘스님’을 붙여 자신이 승려임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별로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스님’을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승려가 자신의 스승을 일컫는 말. 2) 승려를 높여서 일컫는 말. ‘스님’은 ‘승(僧)..

이 시대 창작의 산실 / 임보

/ 임 보 1. 창작 산실 ―운수재에서의 반세기 서울의 우이동 삼각산 밑 내 우거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의 후반이다. 80여 평의 대지에 아담하게 지어진 2층 양옥인데 백여 년 묵은 거목의 소나무가 대문의 입구에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 집의 당호를 운수재(韻壽齋)로 달았다. 운율이 있는 글―곧 시(詩)가 오래 가는 집이란 의미를 담았다. 내 직장이 청주에 있을 때도 나는 이 운수재를 떠나지 않고 매주 오르내리며 15년이 넘게 버티었다. 그래 지금까지 반세기 가까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낡고 헐어서 볼품이 없지만 봄이면 정원에 몇 십 년 묵은 백모란이 수많은 꽃송이를 피워내 그윽한 향기와 함께 온 집안이 환하다. 내가 글을 쓰는 서재는 네댓 평 정..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7 장시 <호메로수>와 시조집 <청산도 유수도 두고>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7 / 임보 ----장시 과 시조집 「천축행」이 수록된 시집은 2016년에 간행된 『산상문답』이지만 이 작품이 실제로 쓰인 것은 한참 오래 전이다. 1998년 8월호 《현대시학》에 발표되었으니 그보다 앞서 씌었을 것이다. 『왕오천축국전』을 생각하면서 혜초의 구도행을 작품화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공력을 드린 작품이기는 한데 독자들에게 얼마나 감동적으로 가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천축행(天竺行) ―혜초(慧超)의 길 1 해는 돛대의 끝에서 화로를 쏟듯 이글거리고 배는 끓는 바다를 가르며 서(西)으로 미끄러지네 상어의 무리들은 물갈기를 번득이며 달려오고 갈매기 떼들은 긴 부리를 세우고 날아들도다 망망하고 망망한 물의 세상 이 물의 끝은 어디이며 이 물의 그릇은 무엇이란 말인가. ..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6) 장시들(1)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6) / 장시들(1) 임 보 원래 서정시 쓰기를 좋아하는 시인들은 분량이 긴 시 쓰기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나 역시 서사성이 담긴 설화시를 즐겨 쓰기는 했지만 읽기에 부담이 될 정도로 긴 분량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몇 편의 장시(다행시(多行詩)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를 썼다. 「황소의 뿔」(『황소의 뿔』신원, 1990), 「호메로스」(『장닭설법』(시학, 2007) 그리고「천축행」(『산상문답』시학, 2016) 등 세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황소의 뿔」은 병영을 무대로 설정한 이야기인데, 주제는 세상을 병들게 하는 ‘악(惡)’에 대한 고발이라고 할 수 있다. 황소의 뿔 애초에 우리들은 바다를 지키는 순진한 수병들이었다 망대에서 바다를 감시하거나 정찰..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5 ----사랑을 다룬 두 편의 독백시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5 임 보 15. 사랑을 다룬 두 편의 독백시 「바우의 탄식」과 「빙옥도」는 시집 『장닭설법』(시학, 2007)에 수록되어 있다. 두 작품 다 성취하지 못한 사랑 얘기를 다루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테마는 ‘사랑’이다. 사랑의 성취도 우리를 황홀케 하지만 성취하지 못한 비련의 안타까움도 우리를 얼마나 흥분케 하는가? 「바우의 탄식」은 소작인인 마름의 아들 바우가 지주의 딸―아씨를 짝사랑하다 쫓겨난 이야기다. 쫓겨난 바우가 성공하여 수십 년이 지난 뒤에 돌아와 아씨와 재회하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전 작품이 바우의 독백만으로 되어 있다. 바우의 탄식 아씨, 나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서른 해 전 어느 동짓달 그믐밤 밤서리 맞으며 도망쳐 갔던 천한 마름의 자식 이 바우놈을 아..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4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4 / 임보 14.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시 본격적으로 사건을 다루는 서사시(敍事詩)라는 장르가 있지만, 분량이 길지 않는 서정시도 짧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어쩌면 이야기 형식이 독자를 설득하는데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민들레가 민들레 씨에게」(『날아가는 은빛 연못』시와 시학, 1994)의 화자는 엄마 민들레다. 깃을 달고 미지의 세상으로 날아갈 자식 민들레에게 들려주는 당부의 말이다. 이는 작자인 내가 후손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민들레가 민들레씨에게 아들아 바람이 오거든 날아라 아직 여린 날개이기는 하지만 주저하지 말고 활짝 펴서 힘차게 날아라 이 어미가 뿌리내린 거친 땅을 미련 없이 버리고 멀리 멀리 날아가거라 그러나 남풍에는 현혹되..

시의 남상을 돌이켜 보며

시의 남상(濫觴)을 돌이켜 보며 임 보 모든 생명체는 표현의 욕구를 지니고 있다. 동물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식물들도 그들의 의지를 얼마나 영롱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아름다운 자태와 눈부신 빛깔로 꽃을 피워 벌과 나비들을 불러들이는 것을 보면 그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 동물들은 각가지 동작과 소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드러내고 있지 않던가? 동물들 가운데서도 인간만큼 고도의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드러내는 생명체는 없다. 인간들은 언어를 만들어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한다. 성대를 울려 음성인 말로 소통할 뿐만 아니라, 문자를 만들어 음성언어가 지닌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있다. 인간이 지상의 영장으로 군림하게 된 것은 어쩌면 언어의 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 ..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3) ---발견 혹은 깨달음의 시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3) / 임 보 13. 발견 혹은 깨달음의 시 시는 ‘새로운 느낌’이나 ‘새로운 생각’에 대한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의 내용에 ‘새로움’이 없다면 생명이 없는 맥 빠진 진술에 불과하다. 그런 글은 존재 의미가 없다. 시에서 말한 영감이라는 것도 어쩌면 ‘새로운 느낌이나 생각’을 이르는 말이리라. 그런데 문제는 그 ‘새로운 느낌이나 생각’이 설득력이 없는 허황된 것이면 곤란하다. 세상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바퀴가 세상을 굴린다」(『아내의 전성시대』시학, 2012)를 읽어 보기로 하자. 두 바퀴의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보면 참 신통하다 애초에 누가 저 기발한, 아니 엉뚱한 발상을 했을까? 두 바퀴를 굴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2 (나와 아내 우려먹기)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2) 임 보 11. 가장 좋은 소재는 ‘나’ ―「나는 토끼다」와 「바보 이력서」 그리고 「작은 손」 ‘나’처럼 좋은 소재가 없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는 나에 관한 글들을 자주 쓴다. 시 「나는 토끼다」(『눈부신 귀향』시학, 2011)는 앞에서도 얼핏 인용한 바가 있지만 나에 관한 자화상이다. 내가 나를 살펴보아도 못마땅한 점들이 너무 많다. 생긴 것도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패기도 없고 결단력도 없고 게으르다. 나는 토끼다 기묘(己卯) 생 토끼띠 음력 5월에 났으니 때를 만났다고 사주(四柱)는 말한다 그러나 한평생 한 번도 큰소리치며 살아보지 못했다 세상을 향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내 집..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1)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 (11) / 임보 8. 상상력으로 빚은 이야기 ―백주의 꿈,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 「월주국」과「청산무」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현실에 대해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시인들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시인들은 그들이 쓴 시를 통해서 현실에 대한 불만을 달래기도 한다. 만일 절대자가 당신에게 이상 국가를 하나 만들어 보라고 허락을 한다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 의식주의 문제에 걱정이 없고, 투쟁과 갈등이 없는 평화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러려면 그런 나라는 어디에 세워야 할까? 그리고 그 나라의 구성원은 어떤 사람들이 적절할까? 시 「월주국(月舟國)」(2019)은 그러한 이상국에 대한 내 꿈의 기록이다. 태평양을 항해하다가 탐라도 크기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