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별장

속도/ 임보 달팽이가 몸으로 풀잎과 풀잎 사이를 길 때 다람쥐는 발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뛰고 물고기는 지느러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며 새들은 날개로 높은 산등성이를 넘어간다 * 사물은 다 자신의 속도를 지니고 불편없이 잘 살아간다. 유독 인간만이 욕심을 부려 제 속도를 넘어서려 한다. ..

빛의 공해/ 임보 네온의 불빛에 하늘이 죽어 도시의 아이들은 은하수를 모르고 가로등 불빛에 어둠이 죽어 도시의 매미들은 밤에도 울고 * 은하수를 모르는 도시의 아이들이나 어둠을 모르는 도시의 매미들이나 다 불행한 생명들이다.

초복/ 임보 능소화 꽃 웃음에 속지 말라고 꽃가루 눈에 들면 눈이 먼다고 모처럼 찾아온 고운 처제가 뜰 앞의 능소화에 삿대질이네 * 뜰 앞의 능소화가 요염하게 피어 있다. 눈가에 주름살이 돋아난 처제가 이를 보고 샘이 났던가. 능소화 꽃가루를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사람들아/ 임보 사람의 집에 가서 삯일을 하지 말고 산과 들녘에 나가 더운 흙일을 해라 사람을 너희 집 뜰에 기르지 말고 산과 들녘에 곧은 나무나 심을 일이다 * 인재를 기르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나무를 심는 일이다. 나무는 배반을 모르기 때문이다.

능파각(凌波閣)/ 임보 개울 위에 다락을 세웠으니 누각(樓閣)이요 개울 위에 다리를 놓았으니 교량(橋梁)이요 개울 위에 절문을 얹었으니 산문(山門)이다 동리산(桐裏山) 계곡 물 위에 뜬 봉황의 집 * 능파각은 곡성 태안사(泰安寺) 입구에 세워진 누각. 개울물 위에 세워져서 능파각이란 이름을 갖게 되..

성인(聖人)/ 임보 노산을 보러 만 리의 창해를 넘고 곡부를 보러 또 만 리의 광야를 건넜다 어찌, 기천 년 전에 이미 떠난 노공(老孔)이 한 선비의 멱살을 잡고 이리 흔든단 말인가? * 유적을 찾는 여행이란 결국 역사적 인물의 탐방에 지나지 않는다.

인물(人物) / 임보 그제는 노산(嶗山)에서 노자를 보았고 어제는 곡부(曲阜)에서 공자를 만났다 오늘 오른 것은 태산(泰山)이지만 결국 산 끝에서 만난 것은 사람들일 뿐 * 산동성의 노산에는 노자의 사당이 있고 곡부에는 공자의 사당이 있다. 태산의 위에도 수많은 인물들의 흔적으로 요란하다...

사랑에 관한 잠언/ 임보 열등생이 없는 과목은 <식사>이고 모두가 우등생인 과목은 <사랑>이다 학습이 필요 없으므로 사랑을 과외 받는 자는 없다 * 본능은 참 신비롭다. 가르치지 않아도 다 잘 한다.

세상 농사/ 임보 돌을 던지면 돌을 맞을 것이오 꽃을 바치면 꽃을 받을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두는 농부처럼 세상의 밭은 정직하다 * 인과응보라고 한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면 선업을 쌓을 일이다.

교육 무용론/ 임보 일자무식 가난뱅이 박석돌은 여든의 에미를 잃고 석 달을 우는데 대학 출신 유식한 황금녀는 여섯 돌 새끼를 두고 가출을 한다 *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품의 배양에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육은 근본이 크게 잘못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