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746

세상은 내 놀이터

세상은 내 놀이터 임 보 뭘 입을까? 뭘 먹을까? 너무 신경 쓸 것 없다 세상 사람들은 의 식 주에 매달려 야단들이지만 너무 연연해 할 것 없다 추위를 덜게 할 수 있는 옷이면 족하고 허기를 면케 하는 음식이면 충분하고 등을 대고 잠을 잘 수 있는 거처면 된다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뽑아 옷을 짓지 말라 산해진미로 혀를 잘못 길들이지 말라 고대광실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고? 부질없는 욕심이 네 소중한 인생을 망칠 것이다 남에게 어떻게 잘 보일 건가에 마음 쓰지 말고 스스로 즐겁게 살 방도를 궁리토록 하라 노래하며 춤도 추며 즐기시라 산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상쾌한가? 물을 보면 또 얼마나 신명이 돋는가? 세상은 나를 위해 세워진 무대―놀이터 천하 만물이 다 내 노래와 춤의 관객이며 또한 추임새가 아닌가?..

신작시 2022.12.09

누가 빨간 사과를 만드는가?

[담시2] 누가 빨간 사과를 만드는가? 임 보 할아버지가 열네 살짜리 손자에게 다시 묻습니다. “네가 좋아하는 빨간 사과를 누가 만드는 줄 아느냐?” “그야 농부지요!” 손자는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그래? 과수원에서 사과나무를 기르는 농부란 말이지?” 농부가 비료도 주고 전지도 해 주고 하며 과목을 돌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할아버지는 손자의 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말이다!” 할아버진 손자에게 다시 말합니다. “농부가 없어도 사과나무는 사과를 매단다!” 빗물이 스며들고 햇빛을 받아 꽃을 피우고 벌들이 수분(受粉)을 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걸 설명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다시 묻습니다. “비를 오게 하고, 햇빛을 주고, 벌들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한참 있던 손자가 말합니다. “해― 태양이..

신작시 2022.12.02

누가 바람을 만드는가?

[담시1] 누가 바람을 만드는가? 임 보 바람이 몹시 세게 불어옵니다. 마당가에 서 있는 살구나무 가지가 찢길 듯 심히 흔들리고 닫친 창문이 덜컹거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두려운 듯 밖을 내다보고 서 있는 열네 살 손자놈에게 호호백발의 할아버지가 묻습니다. “누가 바람을 저렇게 불게 하는 줄 아느냐?” “글쎄요. 바람의 신이 있나요?” 손자가 되묻습니다. “있고말고!” 할아버지가 대답합니다. “할아버지가 보셨나요?” “암, 보았지. 너도 아마 보았을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바람’을 설명합니다. 바람은 공기의 이동이다. 공기가 가벼우면 위로 올라가고 무거우면 밑으로 내려간다. 바람은 무거운 공기가 가벼운 공기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무엇이 공기를 가볍게 하는 줄 아느냐? 손자가 대답이 ..

신작시 2022.12.02

할로윈이 뭐길래!

할로윈이 뭐길래! ―이태원의 참사 소식을 듣고 임 보 할로윈이 뭐라고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미리부터 그리 야단들이었을까? 우리의 명절인 설도 추석도 아닌 서양인들의 낯선 기념일을 앞두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현혹된 것인가? 하기사 한식보다 양식이 한복보다 양복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 무엇을 탓하겠는가? 우리의 얼을 다 빼앗긴 것만 같아 이 나라의 앞날이 참 걱정스럽기만 하다. =====================================

신작시 2022.11.01

왜 그러셨어요?

왜들 그러셨어요? ―이태원 참사를 지켜보면서 임 보 이 땅에 절은 그렇게 많은데 부처님, 왜 모른 척하셨습니까? 이 나라에 교회는 그렇게 넘치는데 하나님, 왜 그렇게 두셨습니까? 아니, 권능의 무당님께서는 뭘 하고 계셨던가요? 금쪽보다 귀한 우리 젊은이들 목숨을 그렇게 앗아가게 하시다니… 이젠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할지 참 난감하기만 합니다. =========================================

신작시 2022.11.01

가을 소식들 / 임보

가을 소식들 임 보 먼 남쪽 고향에서는 대황강변에서 코스모스 음악회를 연다고 초대장을 보내왔다 시인협회에서는 남산의 에서 난민을 위한 바자회를 연다고 소식을 보내왔다 월간《우리詩》에서는 모처럼 삼각산 밑에서 단풍시제를 연다는 통보다 조치원의 처제는 잘 익은 대추와 알밤을 보내오고…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 어떤 가을소식을 보낸다? 다리가 저려서 걷기 힘들다는 소식을 차마 띄울 수도 없고 참! ======================================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신작시 2022.10.28

서울 촌놈

서울 촌놈 임 보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20대에 일찍 서울로 올라왔으니 지금까지 한 60년 한양에서 산 셈이다 그러니 서울놈이라고 할 만도 하다 반세기 넘게 서울에서 살기는 했지만 주로 삼각산 밑 우이동 골짜기에서 산이나 쳐다보며 그렁저렁 지냈으니 산골 촌놈이나 다를 바가 별로 없다 가끔 서울 한복판쯤엘 나가보노라면 도심에 고충건물들이 하늘을 찌르고 곳곳에 아파트의 숲들이 들어서서 어느 이국에 온 것처럼 낯설기만 하다 한강이 변하고 남산이 변하고 종로가 바뀌고 세종로가 바뀌고 광화문, 서대문, 미아리, 박석고개 상전벽해도 이렇게 달라질 수가 없다 노인들은 복잡한 길 찾기도 힘들고 젊은이들 빠른 말 알아듣기도 어렵고 외래어 간판들하며, 낯선 서양 음식들 서울촌놈!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신작시 202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