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재 / 임보 운수재韻壽齋 / 임보 풋고추 날된장에 매실주 말술 수석壽石 송죽松竹에 문방사보文房四寶 짊어지고 삼각산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한평생 어느 제 가락 얻어 인수봉을 오르리 * 운수재는 내 서재의 이름이다. 말이 서재지 작은 마루다. 몇 개의 수석과 뜰에 있는 송죽 거느리고 매일 매실주나 홀짝이면..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30
시수헌 / 임보 시수헌詩壽軒 / 임보 시수헌은 둬 평의 다락방이지만 억만 년 인수仁壽가 지켜보고 있고 천만의 성군星群들이 빛을 쏟고 있는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시詩들의 성지聖地로세 * 어느 분이 <우이동 시인들> 모여 차나 마시라고 그의 옥탑에 자리한 다락방을 우리에게 내 주었다. 방은 초라하지만 인수,..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29
4.19 묘지에서 / 임보 4.19묘지에서 / 임보 삼복三伏 미친 녹음 온 산천 몸살일 때 그대들의 멍든 혼도 하늘토록 차는구나 못다 핀 매운 사랑 불꽃으로 솟아올라 좀먹어 병든 세상 두고두고 태운지고 * 1960년, 내가 대학 3학년이었으니 4.19의 주동 세대인 셈이다. 곤봉에 얻어맞고 옷이 찢기기는 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 ..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28
세이천가 늙은 솔 / 임보 세이천洗耳泉가 늙은 솔/ 임보 세이천가 늙은 솔들 하는 소리 귀도 없는 우리는 무엇을 씻나? 바람결에 끄덕이며 배꼽 내놓고 기지개 하품하며 웃고만 있네 * 세이천은 우이동 골짝에 자리한 샘터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물을 길어간다. 누가 소부巢父 허유許由의 고사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이름을 ..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26
유촌 / 임보 유촌柚村 / 임보 그 옛날 무성했던 유자숲은 간 곳 없고 그 숲에 숨어 살던 선비 귤은橘隱 또한 없네 팽나무야 팽나무야 천년 묵은 팽나무야 이 물가 거친 풍랑 너는 다 보았거니 * 유촌은 거문도의 동도東島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조선조 후기 유학자儒學者 귤은橘隱 김유金劉 선생이 은거하던 곳이..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24
염소 / 임보 염소 / 임보 섬에 배가 닿자 맨 먼저 달려와 반기는 이는 한평생 수평선만 이고 살던 수염이 긴 흑발의 노인 * 섬에 사는 짐승들은 선하다. 사람에게 엉금엉금 다가온다. 수염이 긴 염소는 노인 같다.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22
해변의 꿈 / 임보 해변의 꿈 / 임보 아이들은 검은 발등으로 푸른 바다를 밀어내고 어린 게들은 작은 발톱으로 낮은 섬을 밀어올리고… * 해변의 모래톱에서 파도를 밟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천진한가. 작은 게들은 바다의 아이들 같다. 이들은 잘 어울리는 친구다.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21
마라도 / 임보 마라도/ 임보 파도와 바람에 닳고 닳아 코도 귀도 다 떨어져 나간 항공모함의 갑판처럼 출렁이는 등대 하나 돛대로 꽂고― * 마라도는 제주 남쪽에 있는 한국 최남단의 섬이다. 섬의 위가 평평하게 경사져 있어서 마치 항공모함의 갑판 같다. 꽂혀 있는 등대는 돛대다. 어디를 향해 항해하고 있는 것인..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19
마곡사 골짝 / 임보 마곡사麻谷寺 골짝/ 임보 나무 위엔 다람쥐 개울 속엔 피래미 뱀딸기, 개망초도 신이 납니다 댕댕이, 머루넝쿨 어우러져서 염주, 목탁 없이도 잘도 놉니다 * 세상은 잘 돌아간다. 모든 생명들은 적재적소에 자리잡아 아무런 불평 없이 잘 살아가고들 있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이 불만이다. 더 좋은 곳, ..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17
낙화암 / 임보 낙화암落花巖 / 임보 낙화암 절벽 보러 찾아갔더니 떨어진 궁녀들은 흔적도 없고 백화정百花亭 마루바닥 다 무너지게 팔도 여편네들 니나노판이네 * 삼천 궁녀가 백마강에 꽃처럼 떨어져 산화해 갔다는 낙화암 위에는 백화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이 서글픈 역사와는 어울리지 않게 니나노판을.. 임보시집들/운주천불 2007.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