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나는 무수히 찍혔다 / 임보

운수재 2007. 7. 3. 06:11

 

 

나는 무수히 찍혔다  /   임보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마다

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우체국 창구며

24시간 자동코너에서

슈퍼마켓에서 일용품을 사다가

세콤이 붙어있는 대문 앞을 지나다

나도 모르게 나는 찍힌다

 

아니,

현금 출납 시는 말할 것도 없고

도서관의 도서 대출이며

식당에서 카드를 그을 때도

전화기의 버튼을 누를 때도

인터넷 사이트를 드나들 때도

나는 여지없이 찍힌다

 

영상과 기호로만 존재하는 나

빛의 칼날에

만신창이로 찢긴 채

무수한 공간에 분해 감금되어 있다

핀에 찔린 곤충처럼

전자 그물에 사로잡혀

꼼짝달싹 못 하는 신세다

 

아,

어떻게 그 구속을 벗어난다?

주민번호에

군번, 학번

ID며 PASS WORD들

이것들을 어떻게 빠져나온다?

그러니 속수무책 찍힐 수밖에

 

(우리시 200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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