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부인(水路夫人)의 연사(戀史)/ 임보
삼국외사(三國外史)에 의하면 수로(水路)는 평소 방장산(方丈山) 운허사(雲虛寺)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이는 자암존사(紫巖尊師)의 설법을 즐겨 들으려 함이더라. 수로가 부군(夫君) 순정공(純貞公)을 따라 임지로 가던 중, 방장산록을 지나며 자암을 못 잊어 詩 한 수를 지어 이를 전하려고 사자를 구했으나 적당한 사람이 없거늘 지나가는 견우노인(牽牛老人)을 붙들어 은밀히 청하더라. 詩에 曰
천 길 단애
바위 서리에
피온 철쭉도곤
닿기 고된 님하,
온 산과 들히
가람되어
나를 따르는데
그대 붉은 바위
홀로 올올함은
전세에
심은 한(恨)
사랑으로
태움인가?
아소, 님하,
이승에 못 닿을 사랑이면
만 길 바닷물결 끌어다
이 가슴
메우고져.
견우노인 또한 평소에 자암과 교유하던 사이라 선듯 수로의 청을 들어 나서기는 했으나, 자암의 회한(回翰)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니 멋적어 철쭉 한 가지를 꺾어 그녀에게 바치며 노래하기를
자암 곁에
모시던 손
이제 암소 먹이는 일도
다 그만 두고
날 두렵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곶 것거
받드리이다.
이를 후세 사람들은 헌화가(獻花歌)라 이르더라. 어떻든 이로부터 노인은 끌던 소도 버리고 수로의 일행을 따라 가는데, 한 이틀쯤 걷다가 시종들이 잠든 밤에 몰래 부인을 업고 운허사를 향해 달려가것다. 마침 그믐 달빛에 눈을 씻던 자암이 문득 그 기(氣)를 잡자 장삼(長衫)으로 산등성이를 내려치며 날아와서 수로를 앗아 흑룡동(黑龍洞) 암굴(巖窟) 속으로 사라지더라. 급히 되돌아온 노인이 이르기를 해룡(海龍)이 그 갈기 위에 부인을 싣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하더라.
순정공이 바다를 향해 발을 굴러 서 있기를 사흘쯤 한 후 노인이 공 앞에 나아가
「뭇 입은 쇠도 녹인다 하였으니 경내의 백성들을 모아 흑룡동 언덕을 막대로 치며 노래를 지어 부르면 바다짐승도 또한 두렵게 여기지 않겠는가?」
고 하였다. 이에 노인의 말대로 언덕을 치며 노래를 부르니 사(詞)에
龜乎龜乎出水路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 남의 부인 앗아간 죄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入網捕掠燔之喫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어 버리리라
아침 안개 걷히는 흑룡동 암굴 위에 수로가 선녀처럼 드러나거늘 공이 달려가 붙들고 해중(海中)의 일을 물으니 수로 대답이
「칠보궁전(七寶宮殿)에
산해진미(山海珍味)
인간세(人間世)에 못 보던
맛이더이다」
노인이 곁에 서 있다가 큰 기침을 하며 일행을 재촉해 길을 떠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