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산방동동

교감

운수재 2010. 4. 8. 06:26

 

 

 

 

교감(交感)

                                      임보

 

 

간밤엔

내 어려서 듣던

그 귀 큰 장대귀신이

밤새 내 베갯머리를 흔들더니

이 아침엔

몇 해째 앓던 어금니가 부러져

혀를 깨문다.

 

간밤엔

내 유년의 목조 교실에서

온종일 시험만 보다

조부 회초리에 종아리가 따갑더니

이 아침엔

타다 만 구공탄에 불을 붙이는

미명(未明) 가득히 두런대는 아내의

젖은 목소리.

 

간밤엔

스물넷 무더운 여름

내 육군 상병의 막사에

그렇게 비만 내리더니

이 아침엔

서른여섯 눈 시린 가을

늦은 책상머리에 빈 청자 한 갑.

 

간밤엔

청계(淸溪) 그 맑은 강변에서

키가 넘도록 애써 모아 쌓은

오석(烏石) 돌무더기가

검은 새들로 하늘에 날아오르더니

이 아침엔

오래 불임(不姙)턴

우리 유월달 황색 강아지

문밖에서

그의 아픈 초야(初夜)를 짖는다.

 

 

 

 

 

 

'임보시집들 > 산방동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앙선 야행  (0) 2010.03.31
수석경기체가  (0) 2010.03.25
한밤에 먹을 갈면  (0) 2010.03.23
유년의 강  (0) 2010.03.19
석화 온천 병원  (0) 2010.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