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의 시화(詩畵)

[스크랩] 임보 선생님의 ` 눈밭에 서서`를 읽고

운수재 2012. 10. 19. 15:11


 
              눈밭에 서서  /  임보
              지난 이른 봄에
              친구 따라 팔도 명승지를 돌면서
              내가 얼마나 산과 물을 모르고 살았던가
              무척 부끄러워했다.
              지난여름엔
              우이동(牛耳洞) 숲속을 혼자 헤매면서
              내가 얼마나 저 수목들의 이름에 눈이 어두운가
              심히 뉘우치기도 했다.
              지난가을엔
              내 집 뜰 한 귀퉁이에서
              시들어 가는 이름 모를 풀잎을 보며
              그놈이 한해살이인지 여러해살이인지 몰라
              못내 안타까와도 했다.
              그런데 이 겨울
              저 눈밭에 나가 서 보고
              내가 살았던 한 해가 얼마나
              헛된 것이었던가를 드디어 보았다.
              그놈들이 무슨 이름을 달고 있든
              내가 그놈들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을
              공연히 쓸데없는 데 마음을 쓰면서
              한 일 년 허송세월한 것을
              비로소 보았다.
                  ---시집 <은수달 사냥>에서--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아직은 적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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