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퇴(蟬退)*
임보
뜰의 군데군데에 구멍이 뚫려 있다
수년 동안 땅 속에서 면벽 좌선한 매미들이
토굴을 열고 나온 흔적이다
토란 잎새며
명자나무 가지며
여기 저기 덩그렇게 걸려 있는 매미의 허물들
집 나간 사람이 벗어 놓은 옷처럼 허전하다
이놈들을 몇 개 주워다
책상머리에 올려놓고 보며
환골탈태(換骨奪胎)
우화등선(羽化登仙) 어쩌고 하며
그들의 길을 생각한다
저 좁고도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 지내면서도
몸속에 날개를 길렀으리
겨우 1주일 허공을 날기 위해
어떤 놈은 17년이나 토굴수행을 했다니……
눈에 담긴 선퇴(蟬退)가 마치
고승의 가사(袈裟)만 같아
너무 맑고 시리다
* 선퇴(蟬退) : 매미 허물. 선각(蟬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