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에 대하여
임보
어떤 조상은 알[卵]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성인은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어미의 하문을 열고 나온다
(하기사 요즘은 사주팔자를 미리 보고
제왕절개로 일찍 출생시키기도 한다)
어미 뱃속에서 열 달을 머물다가
이 세상 맞는 것은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어떤 생명은 축복과 기림을 받고 태어나
요람에 싸여 자장가를 들으며 자라기도 하고
어떤 생명은 저주와 증오를 받으며 태어나
강보에 싸인 채 길거리에 버려지기도 한다
태어나는 상황도 가지가지다
어떤 산모는 길을 가다 출산하기도 하고
배나 차를 타고 가다 산고를 겪기도 한다
어떤 농부의 아내는 밭일을 하다
자신의 이빨로 탯줄을 끊었다는 얘기도 있다
피난길에 태어나 첫 울음을 제대로 못 울기도 하고
흉년에 태어나 어미의 젖을 못 물어본 경우도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몸을 빌어 태어나느냐에 따라
한 생애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주팔자를 따지는가 보다
비옥한 밭에 뿌려진 곡식은 잘 자라지만
척박한 땅에 돋아난 씨앗은 평생을 굶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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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보의 잠언시집 [산상문답]에서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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