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열어 주세요
임보
저녁 시간 식탁에 앉아 술 한잔 놓고 있는데
부엌에서 아내가 부른다
이것 좀 열어 주세요!
취나물을 무치면서 깨소금통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열어 주고 다시 가서 술 한잔 마신다
이것 좀 열어 주세요!
새로 무친 취나물을 담기 위해
닫힌 플라스틱 그릇 뚜껑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열어 주고 다시 가서 또 술 한잔 마신다
이것 좀 열어 주세요!
열무김치를 담그면서 액젓 든 병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병의 뚜껑을 닫고
명령대로 냉장고를 향해 가는 도중에
뚜껑에서 병이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부엌의 바닥이 액젓으로 낭자하다
이를 어찌할꼬?
(다음의 상황은 생략한다)
생각해 보니
술 마시고 있는 내게 이것 저것 시키는 것이
못마땅했던가 보다.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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