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지람(夢之藍)
임보
중국의 명주 가운데 양허(洋河)가 빚은 술에
해지람(海之藍), 천지람(天之藍), 몽지람(夢之藍)이라는 게 있다
‘바다의 쪽빛’ ‘하늘의 쪽빛’ ‘꿈의 쪽빛’이라니
술에 선미(仙味)를 실은 풍류로운 이름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 명주들을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운좋게 다 만나보았다
재작년에는 난정(蘭丁)*이 가져온 해지람을
시수헌*에서 단 둘이 바닥낸 적이 있고
작년 여름에는 내게 들어온 천지람으로
도봉산 계곡에서 소인(騷人)들의 흥을 돋운 바 있다
이런 내 술 얘기를 들은 어느 시인이
또 격조 높은 몽지람을 구해 보내왔기에
며칠 전 그 ‘꿈의 쪽 술’을 시수헌에 가져가
몇 시우들과 주회를 벌였는데
정오가 되기도 전에 시작한 그 술자리가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석양까지 이어졌다
몽지람이 바닥이 나자 진도 홍주까지 끌어들여
꿈의 쪽빛 바다에서 너울너울 출렁거렸다
“여주들 봇미나리 다발로 져다
물 좋은 흑산 홍어 얼큰히 무쳐
몽지람 홀짝이며 생각하네
갯가로 가리 까짓껏 갯가로 가
겨울에도 얼지 않는 남쪽 갯가로…”*
세상이 온통 흔들리는 환한 쪽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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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정(蘭丁) : 홍해리 시인의 아호.
* 시수헌(詩壽軒) : 우리시회 사랑방.
* 졸시 「홍어회」의 한 구절을 변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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