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가축들의 반란

운수재 2020. 6. 2. 10:07

 

가축들의 반란

임보

 

 

좁은 닭장 속에 갇힌 한 암탉이 생각했다

이렇게 좁은 철망 속에 평생 갇혀 살 수는 없다고

그리하여 먹기를 거부하고 알을 낳지 않았다

이 소식이 옆 닭장 속의 다른 닭들에게 전해지자

그들도 옳다고 생각하며 동조하기로 했다

 

이 뉴스가 그 옆 돼지축사의 돈공(豚公)들에게 알려지자

돈공들도 꿀꿀거리며 구수회의를 했다

그리고 저희들도 이렇게 갇혀 살 수는 없다며

우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고함소리가 젖소목장의 젖소들에게 들리자

얌전하던 젖소들도 생각했다

우리는 저놈들보다 더 심하게 착취당하는데

이대로 가만히 참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며

그들도 외양간을 막차도 뛰쳐나갔다

 

그런데 막상

밖으로 뛰쳐나온 돼지며 젖소들이 할 일이 없었다

겨울이어서 날씨도 춥고 먹을 것도 없어

빈둥거리다 보니 배가 고팠다

배 고픔을 못 견딘 돼지가 그래도 우리속이 낫다며

축사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다

 

그리하여 축사와 목장은

돼지와 젖소들로 다시 채워지고

이 소식을 들은 닭장 속의 닭들도

그만 단식농성을 풀고 알을 낳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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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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