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금(古猿琴) / 임보
옛날에 고원금이라는 거문고가 있었는데, 그 울림이 심히 신묘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들의
가슴도 사로잡았다. 신비스런 일은 병이 든 자들이 그 가락에 귀를 적시면 병이 낫고, 사나운 짐승들도 그 소리 앞에서는 양처럼
유순히 누그러진다. 도대체 이 거문고가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이렇단 말인가.
고서(古書)에 이르기를 후한(後漢)의
장중경(張仲景)이란 자는 명의(名醫)인데 그의 앞엔 병든 사람들이 늘 구름처럼 밀려든다. 어느 날 한 노인이 크게 부른 배를 안고
찾아와 진맥(診脈)을 청하기로, 살펴보니 사람과 달랐다. "인맥(人脈)이 아니라 수맥(獸脈)이로고"하니 노인이 엎드려 사실을
고했다. "실은 이 산중에 사는 원숭이로 선생님의 인술(仁術)을 빌고자 둔갑(遁甲)을 했습니다. 살려 주소서" 이에 장중경은
병에 인수(人獸)의 구별이 있을까 보냐며 환약을 주어 치료케 했다. 늙은 원숭이는 돌아가 천 년 묵은 오동나무를 보내 그 고마움에
보답했는데, 장(張)이 이 오동으로 금(琴)을 만든 것이 곧 천하명기(天下名器)인 고원금이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명의(名醫)가
덕의(德醫)를 겸했을 때 고원금을 얻었다고도 한다. 거문고에 덕의(德醫)의 혼이 깃들어 장(張)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금(琴)이 장(張)을 대신하여 그렇게 세상에 덕을 베풀었던 것인가.
우리가 만진 한 개의 돌멩이나 나뭇가지 속에도
우리의 체온이 서려 세상을 덥게도 혹은 차게도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평생 그 많은 것들을 만나고 있으니 이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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