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포 가는 길 / 임보
자하동紫霞洞에서 운포雲浦라는 포구를 찾아 몇 날 며칠을 걷고 있던 때다 어느 한 강가에 이르렀더니 아름드리 오동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그 그늘 밑에 네댓 사람이 널부러져들 있다 아마 길을 가다 잠시 쉬고 있는 나그네들인가 보다 나도 땀을 식히려고 오동 그늘 아래 발을 들여 놓았더니 "운포雲浦까지는 아직 둬 천리나 됩니다" 하고 한 사내가 자리를 뜨면서 내 귀에다 일러 주고 간다 내 마음을 읽어 미리 대답을 던지는 솜씨다 내 눈이 휘동글해지자 또 한 사내가 자리를 뜨면서 "고기는 많은데 먹을 게 없구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가던 자가 고개를 돌려 오동나무 가지 위를 눈짓한다 몰총새 한 마리가 강물을 내려다보며 우짖고 있다 옳거니 저 자는 날짐승의 소리에도 귀가 열려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러자 빙긋이 웃고만 있던 흰 눈썹의 영감이 "이분은 푸나무의 소리도 잘 듣습니다"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덥석부리 사내를 턱질한다 허자 덥석부리가 슬며시 눈을 뜨더니 "돌의 마음을 읽는 분도 있답니다" 하고 눈썹 영감을 바라다보는 게 아닌가 참 신묘한 일이로다 어떤 자는 사람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보고 어떤 자는 짐승들의 소리에도 밝고 어떤 자는 초목들의 몸짓도 읽을 수 있고 또 어떤 자는 생명이 없는 돌들의 속내까지 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내가 부러워하는 눈초리로 이들을 보고 있자 한 귀퉁이에 말없이 앉아 있던 꾀죄죄한 늙은이 하나가 자리를 뜨면서 던지는 말이다 "그 많은 소리들을 듣고 시끄러워 어찌들 지내나 나는 내 소리만 들어도 귀찮은데" 하며 귀를 여는 일보다 귀를 닫는 일이 더 어렵다고 투덜거리며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