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궁술

운수재 2007. 4. 12. 06:25

 

[선시] 궁술(弓術)   /   임보

 

 

 황학정(黃鶴亭)은 활터다
 수십 명의 궁사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 있다
 

 청모(靑帽)의 궁사(弓士)가 맨 처음 시위를 당긴다
 오시오중(五矢五中) 
 과녁의 붉은 중앙에 다섯 개의 화살이 다 들어갔다
 주위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다음은 홍모(紅帽)의 궁사가 올라섰다
 다섯 개의 화살이 모두 다
 붉은 중앙의 한 중심점에 꽂혔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이윽고 흑모(黑帽)의 궁사가 등장했다
 첫번째 화살의 끝을 

 두번째 화살이 쪼개고 들어가 꽂히고
 네번째 화살 역시 마지막 화살에 쪼개지고 만다
 사람들은 한동안 박수도 잊은 채 입을 떡 벌이고 있다

 
 이를 능가할 자는 없단 말인가
 그러자 황모(黃帽)의 궁사가 들어선다
 그는 녹(綠) 청(靑) 홍(紅) 흑(黑) 황(黃) 
 다섯 개의 화살을 차례로 공중에 날린다
 이들 화살이 차례로 과녁에 들어와 일자(一字)로 박히는데
 황, 흑, 홍, 청, 녹 
 내려와 박히는 것은 역순이다
 먼저 날린 화살이 제일 나중에 이르고
 끝에 날린 화살이 제일 먼저 도달한 셈이다


 신궁(神弓)의 솜씨가 아닐 수 없다
 이 사람을 넘어설 자는 없겠구나
 사람들은 몸을 떨면서 지켜보고 있다
 더 이상 나서는 자가 없자
 

 한 노인이 자기도 한번 해 보겠노라고
 터덜터덜 걸어나온다
 노인은 곁에 있는 한 궁사의 활을 빌어
 화살도 없이 빈 시위만을 과녁을 향해 당긴다
 그러자 이 어이된 일인가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멀리 있는 과녁의 판이
 통째로 공중에 떠 날아가고 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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