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감상]
최치원의「추야우중(秋夜雨中)」 / 임보
秋風惟苦吟 가을 바람만 애처로이 부는데
世路少知音 세상 길엔 내 마음 아는 이 없네
窓外三更雨 한밤중 창밖에는 비만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불 앞 마음은 만리를 달리네
―「秋夜雨中」(비 내리는 가을 밤)
화자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자연물[秋風, 三更雨]에 의탁해서 효율적으로 잘 표현해 내고 있는 가작이다. 낙엽이 지는 가을, 마른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것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한밤중이라니….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이[知音]는 아무도 없는 세상, 밤 깊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등불을 밝히고 있다. 등불을 대하고 앉아 있으려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그 생각을 ‘만리심(萬里心’이라고 했다. 만리심이란 무엇인가? 이 만리심이 이 작품의 시안(詩眼)이며 요체(要諦)라고 할 수 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 857~?)은 신라 말의 유학자이며 저명한 문인인 동시에 한국 도교의 비조(鼻祖)로 알려진 분이다. 육두품(六頭品)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시절,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 유학의 길에 오른다. 그는 젊은 나이에 외국인을 상대로 한 과거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여 잠시 지방관으로 근무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세력가였던 절도사 고변(高騈 ; 821~887)의 휘하로 들어가 그의 종사관(從事官)이 된다. 마침 황소(黃巢)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그의 문명을 천하에 떨친다. 그러나 조국에 돌아와 청운의 뜻을 펼쳐 보겠다는 꿈이 어찌 없었겠는가. 그래서 29세의 청년 최치원은 헌강왕(憲康王) 11년(885)에 귀국하게 되고 한림학사(翰林學士) 등의 관직을 받는다. 그러나 진성여왕의 난정(亂政)으로 말미암아 견훤 궁예 등의 반란 세력이 창궐하여 난세에 접한다. 이 난국을 바로잡기 위해 시무책(時務策)을 임금께 올리나 시행되지 못하고 주위의 질시하는 무리들에게 밀려 벼슬길을 떠나고 만다. 이후 현실을 버리고 시문을 즐기며 명승지를 유람하다가 만년에 가야산에 들어 은거한다.
「秋夜雨中」의 제작 연대가 분명히 밝혀져 있지는 않다. 어떤 이는 외로운 객지 생활을 하던 당나라 유학 시절의 작품으로 보려고 한다. 그래서 ‘만리심’을 고국을 향해 달리는 향수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기는 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 서려 있는 시풍(詩風)으로 보았을 때, 29세 미만의 청년 소작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미진함이 없지 않다. ‘토황소격문’을 썼던 패기 넘치는 청년기에 이런 작품이 나왔을 것 같지가 않다. 가을 비바람 소리에 잠 못 든 젊은이를 상상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이 작품에는 작자의 연륜이 서려 있어 보인다. 생에 대한 혹은 세상에 대한 깊은 고뇌가 엿보인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청년기가 아닌 장년기 이후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마도 가야산에 은거해 지내던 만년의 작품이 아닌가 추정된다. 또한 이 작품이 당나라 시절의 문집인『계원필경(桂苑筆耕)』에 수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만리심’은 무엇인가? 무엇을 향한 만리심이란 말인가?
고국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오히려 바다 건너 멀리 떨어져 있는 당나라를 향한 그리움이란 말인가?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는 연민의 정일까? 만리심에는 과거를 향한 개인적인 연민의 정도 없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인간 존재의 고뇌가 서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운선생문집』에는 ‘萬里心’이 ‘萬古心’으로 되어 있다. 전자는 공간적 개념이 주도하고, 후자는 시간적 개념이 주도하는 시어다. 그런데 역사에 집착하는 ‘萬古’의 개념과는 달리 ‘萬里’는 시공을 아우르는 포괄성을 갖는다. 말하자면 ‘만리심’은 천고의 역사와 우주 공간을 오르내리는 아스라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유구한 역사 위에 놓인 짧은 인생, 무한한 우주를 바라다보는 왜소한 인간…, 만리심에는 이처럼 무궁한 시공(時空)에 대한 유한자 인간의 삭연(索然)함이 담겨 있다. ‘고운(孤雲)’이라는 아호(雅號)의 의미를 새삼 떠오르게 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기구(起句)를 ‘추풍에도 오직 애써 시만 읊을 뿐’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음(吟)’은 원래 시를 읊조리는 것이니 화자를 주체로 삼은 것이리라.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면 결구(結句)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시를 읊조리면서 등불 앞에서 ‘만리심’을 자아낸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동적인 화자보다는 정적인 화자가 어울린다. 따라서 ‘吟’의 주체를 화자로 보기보다는 ‘추풍’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소소한 가을 바람 소리가 괴로히 시를 읊듯 들리는 정황이다.
승구(承句)의 ‘知音’은『열자(列子)』에서 유래된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그의 벗 종자기(鐘子期)가 잘 알아주었는데, 종자기가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자신의 소리를 아는 이가 없다 하여 거문고 줄을 끊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생겨난 말이다. 지음은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 곧 지기(知己)를 뜻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굳이 지기로 한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포부를 이해해 주는 현명한 인물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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