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2 / 유공희
밀감물 같은 햇볕이 창가에 쏟아지고 있는 오늘은 봄같이 따스한 늦가을 오후
피로한 몸을 창가에 눕히고 있으면 창밖은 왼통 푸른 하늘― 그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은 흘러서 가고
목쉰 짐승의 울음소리같이 슬픈 기적소리가 생각던 것보다는 자주로 이 가난한 고요를 뚫어 오고 하는데
잘도 나는 슬픈 체도 않고 목 놓고 울고만 싶은 세상을 어느 새에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이렇게 낯선 고을 어느 위치에 살고 있어
살고 있다는 것이 이 밀감물 같은 햇볕 속에서 왜 더욱 슬퍼지는 것일까!
이렇게 슬퍼지는 마음과 눈을 가진 채 먼 고향 들과 숲을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낯익은 얼굴들이 오고가는 노란 과잣집 돌담과 감나무와 해바라기의 골목에라도 가보고 싶다.
가보고 싶다는 것이 무슨 보람일까! 불시로 기적소리가 흘러오는 자꾸만 푸른 하늘에 구름이 가는 창 아래― 목이 막히듯 가슴에 넘치는 것을 아이들처럼 소리 내어 울어보고도 싶다.
(195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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