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空地)의 사상 / 유공희
1
자연은 진공을 미워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은 공간을 미워하는 것 같다.
길을 걷다 보면 길가의 손바닥만한 빈 터에도 가시를 두르고 철사를 치고 무, 배추 나부랭이를 촘촘히 갈아놓은 것이라든지,
아는 집 방안에라도 들어가 보면 이불장, 양복장, 쌀뒤주, 책상, 궤짝 등등으로 온통 공간을 메꾸고 그 틈바구니에 끼어 앉아서 사노란다고 되작거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노상 그러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지 공간을 메꾸어 가는 것이 우리 서민들의 생의 목표가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일제 말엽에 쏟아져 나오던 보급형 라디오를 고장이 난 채 버려두었던 것을 며칠 전에 지나가는 행상인에게 부속품 값만 쳐서 팔아버린 일이 있는데,
그 고장 난 라디오가 놓였던 자리를 가리키면서 아내가 어쩐지 허전하다고 뇌까리는 것을 보고 살림하는 여자의 심정이란 공간을 저주하는 마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 부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N읍에다 마음에 드는 주택을 장만하고 신혼생활을 진진하게 즐길 때 일이다.
자전거를 몰고 인근을 쏘다니며 석류, 해당, 남천, 측백 등등 정원수를 사다가 적소에 심어 두고 유리창 너머로 유유히 즐기고 있는 터인데 하루는 집에 돌아와 보니까,
나의 죄없는 유한의 취미가 여지없이 말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꽃이 피기 시작한 석류, 해당, 다알리아 밑의 유수한 공간이 온통 파[蔥]라는 멋없는 괴물의 침입으로 유린되고 말았다.
아내의 말인즉 김장거리 파는 이로써 걱정이 없다는 것이요, 욕실 앞의 공지를 더 무찔러서 배추를 심겠다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교사의 박봉에 막대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그럴 듯한 재정학설이었다.
따는 설(說)대로 되었으리라 추측이 가는 바이다.
이제는 푸성귀 하나 꽂아 볼 수 있는 내 땅 한 조각마저 없어져 버려서 아내의 재정학설도 빛을 잃은 지 오래니 내 완상(玩賞)의 취미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몇 해 전에 N읍에 들르게 되었을 때 우연히 그 추억의 집 앞을 지나다가 열어제친 대문 안을 일별했더니
이제는 누가 사는 지 알 수도 없는 그 뜰안에는 몰라보게 자란 남천 한 그루가 눈에 띌 뿐
온통 채전으로 변하고 분뇨 냄새만이 문밖에까지 부동하고 있었으니 지금도 그 때의 삭연하던 마음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정성껏 가꾸어 둔 나무들이 흔적도 없이 되어 버린 것이 서글프기도 했겠지만 손바닥만한 여지도 남기지 않고 공지를 모두 갈아엎어 버리는 인정이 끔찍하게만 여겨졌던 것이다.
빈틈없이 지표를 갈아엎고 지각까지 뚫어재끼는 재주가 문화니 문명이니 하는 것이며
요즈음에는 또 엉뚱하게도 달에까지 날아가서 저 고운 얼굴에다 그 문명이라는 부스럼을 옮겨 놓겠다는 가공할 정력을 인류는 과시하고 있으니
공지를 저주하는 심리는 바로 문명을 창조할 줄 아는 영장(靈長)의 의지인지 모를 일이다.
2
그러나 나는 이따금 한사코 공지를 갈아엎는 인간과 빈들빈들 공지를 소요하는 개나 닭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는 이 지구 위에서 일을 하는 동물은 오직 사람밖에 없다고 한 그 누군가의 말을 생각한다.
과연 ‘일’을 하는 생물이란 이 지구 위에서 인간밖에는 없는 상 싶다.
아무리 먹이를 찾아서 헤매고 있을망정 개나 닭의 생활은 유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은 자나 깨나 진땀나는 일의 연속이다.
논다는 것은 인간 세상에서는 죄를 짓게 된다는 사실과 통한다.
거리를 거닐다가 여기 저기 쓰레기나 쌓여 있는 공지를 보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인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도 본 듯 의아한 느낌을 가지게 되고 빈들빈들 놀고만 지내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은근한 적의를 품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아나 적의는 실상은 답답한 불감증의 역반응이거나 아득한 어떤 억압심리의 반발적 표현이 아닐까 한다.
문명은 지표의 공지를 말살해 버렸고 또 인간의 생활에서 시간과 마음의 공지를 박탈해 버렸다.
문명의 노예가 되고 만성의 불감증에 걸려버린 인간은 미친 듯한 기계문명의 메커니즘에 개미 떼같이 쫓기면서 아득한 고향 하늘을 생각해 볼 여가조차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는가?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 어느 틈바귀에선지 메스껍도록 향수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긴 한숨처럼 그것이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시간의 여백을 문득 만나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번잡한 거리를 걸어가다가 의외에도 퍼렇게 잡초가 우거진 공지 안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것은 아무도 없는 뜰안에 타는 모닥불의 향기 같은 것이다.
그것은 또한 조개들이 반짝반짝 놀고 있는 바닷가 하얀 모래밭 같은 것이다.
어느 날 오전 시간을 마치고 변소에서 돌아오다가 코스모스가 구름같이 피어서 쓰러져 있는 공지에서 나는 그러한 향수를 느꼈다.
나는 문득 그 코스모스가 파도처럼 미쳐버린 아무도 없는 공지를 빈들빈들 돌아다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어졌다.
흰 구름만이 흘러가는 하늘을 쳐다보고 누구의 땅도 아닌 넓은 풀밭에 누워 아무 일도 없이 담배를 피워 보고 싶었다.
공지가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아무 일도 없이 빈들거려 보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이다. 까닭없이 자꾸만 창피해질 때가 있는 것이다.
타인의 표정과 의미에 대한 관심이 무장한 수위처럼 버티고 있는 충혈된 얼굴들이 구역이 날 것같이 싫어질 때가 있는 것이다.
3
공지를 미워하는 마음은 여가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과 통한다. 그
것은 무엇인가 일을 하지 않으면 산 것 같지 않다는 비천한 노예근성을 습득하는 바탕이 된다.
대변을 보면서도 이자 돈을 계산하는 인간이 있을 지도 모른다.
눈코 뜰 새 없이 일에 쫓기는 사람에게는 대변보는 시간만이라도 마음의 평온을 가질 수 있는 희한한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동정이 가는데 그 여가마저 역사(役事)의 희생이 되어버린다면 구원의 길은 없을 것 같다.
변소의 벽을 메꾸는 낙서는 실상 가장 건강한 사람의 오락에 속한다. 낙서를 미워하는 심리같이 비인간적인 것은 없다.
변소의 낙서를 벌하려 들기 전에 실내의 환경정리에 대한 그 주도한 배려를 변소에도 조금씩 베풀어 보아야 할 일이다.
하다못해 그림엽서 한 장이라도 눈 닿는 위치에 붙여 놓고 보면 알 일이다.
낙서는 권태의 동물인 인간의 가장 무구한 유머임을 먼저 뉘우쳐야 하며, 또 인간은 배설하는 시간까지도 진진하게 즐길 수 있을 만큼은 개화되어야 하리라.
사마천도 변소에서 상을 다듬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요즈음같이 정서 교육을 고조하는 때 단 5,6분 동안이나마 저 무아의 지경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은 새로워져야 할 것 같다.
덤덤하게 바쁘기만 한 측은한 인생을 위해서는 변소란 파리떼의 고향으로만 버려두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쉴 새 없이 위의 충족에 쫓기어 맥이 빠진 가난한 백성이면 새삼 신세타령이라도 발산할 수 있는 ‘공지’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유용함은 그 무용함에 있다!’ 어찌 비단 시간에만 한할 것인가!
혼자 무용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앞뜰이 있어야겠다.
하고많은 세월을 노예처럼 쫓기며 늙어서야 도형수와 다를 것이 없지 않는가.
노예란 자기의 시취(尸臭)를 즐기면서 살 수 있게 된 생물을 이름이다.
4
해가 넘어가고 서쪽 하늘이 ‘지옥편’의 어느 하늘처럼 처량해 갈 때 울 앞에 있는 공지에 홀로 서 있으면 땅거미가 밀려드는 먼 언덕을 넘어서 흘러오는 도심의 소음이 문득 의미 이전에서 허우적거리고 이곳저곳의 침울한 산의 능선들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황혼이 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인생을 오해하는 순간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희한하게 엄습하는 것이다.
목적지도 알 수 없는데 짐도 모두 잃어버린 채 병들지 않는 오감(五感)을 지니고 말이다.
낯선 것들은 내 오감의 건강을 언제나 시원하게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아, 여행이 아니라도 너의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볼 때마다 낯선 눈처럼 신비하게 느껴지도록 그렇게 사랑하여라. 그
음성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도록 그렇게 사랑하여라.
때로는 보고 싶은 정을, 너의 그 모자람이 없는 마음의 공지 안에서 무르익도록 키우라는 말이다.
시를 읽을 때에는 행과 행 사이의 공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은 시같이 가꾸어야 하는 것이다. (광주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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