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 독서 편상 / 유공희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황금빛 나는 생활의 나무는 항상 푸르다’ ―메피스토페레스
1. 현해탄(玄海灘) 위의 도스토예프스키
현해탄은 우리 한국의 학생들에겐 운명의 바다였다.
옛날부터 파도가 높기로 이름난 이 바다 위에 나라를 빼앗긴 젊은이들의 꿈과 분노와 정열이 함께 얽히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이따금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게 되면 나는 비운 맥주병을 입에 대고 불어 보는 버릇이 있는데
그 소리가 나와 나의 친구들을 싣고 파도 높은 현해탄을 건너다니던 연락선의 기적 소리와 희한하게도 같은 때문이고,
그때마다 나는 그 검푸른 파도가 꿈틀거리는 현해탄을 생각하고,
또 지금은 꿈속 같은 나의 학생 시절의 그날 그날을 잠시나마 눈앞에 그려보는 것이다.
부산과 하관(下關)을 왕래하는 이 연락선의 3등실은 또 그 당시의 빼앗긴 조국의 한 축도라고도 할 수 있는 온갖 정경을 찾아볼 수 있었다.
침략자의 사찰망이 눈에 불을 쓰고 우리들의 사상을 수색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들의 침략자에 대한 분만(忿懣)은 이 파도 높은 현해탄을 건널 때마다 거세지고 깊어지는 것이었다.
고향을 버리고 바다를 건너 살 길을 찾아간다는 가난한 동포들의 보따리 틈에 누워,
디젤 엔진의 무딘 울림을 배꼽까지 느끼며 둥근 선창 밖에 눈썹까지 부풀어 오르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상념에 잠기던 그때를 나는 이따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이 바다를 건널 때, 머리털이 지금 서울고등학교 학생만큼이나 자란 열아홉 살 때,
불쌍한 동포들 틈에 끼어서 읽은 책이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려본 것은 이때가 처음인데
이 작품을 그 당시의 러시아 문단에 추천한 베린스키도 울었었다니까 작품의 감동력도 있었거니와
연락선 3등실의 분위기가 이 감상적인 한국 청년의 마음을 야릇하게 자극해 주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을 줄 안다.
그런데 나의 감동의 도가 좀 지나쳤든지 그만 일본 경찰의 ‘레이더’에 걸려든 것이다.
한 놈의 사복(私服)이 썩 다가오더니 책을 보자고 했다.
무식한 형사는 작자가 무슨 ‘스키’라는 이름에다가 또 제목이 ‘가난한 사람들’이라 했으니 분명 무슨 ‘붉은 책’인 줄 알았든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적뒤적해 보더니 뒷표지 안쪽을 가리키면서 이건 뭐냐고 내미는 것이었다.
친구 집에서 배운 프랑스 샹송 한 곡을 우리말로 옮겨 쓴 그 가사였다.
일본놈인 줄만 알았던 형사는 그걸 유창하게 발음하면서 무슨 암호가 아니냐고 캐는 것이다.
노래라고 대꾸했더니 무슨 노래가 이런 게 있느냐?
노래 같으면 한번 불러보라고 대드는 것을 장소가 안 어울리니 못 부르겠다고 버티었더니 책을 이튿날 아침까지 빌려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그러기로 하고 나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뜬 눈으로 현해탄 거센 물결에 흔들리며 밤을 새웠다.
내 머릿속에 도스토예프스키와 동경과 고향의 부모 형제와 약소민족의 슬픔이 얽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튿날 그 형사놈은 나타나지도 않았고 찾아내지도 못 했다.
나는 하관(下關)에 내리기가 무섭게 책방을 찾아 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을 한 권 구해 가지고 동경 가는 열차 속에서 그 계속을 눈물을 참아가면서 읽어버렸다.
2. 세 종류의 책을 한꺼번에
동경에 오니까 내가 다니는 M대학 근처에는 온통 책점이 즐비했다.
매달 나오는 신간, 월간, 문고 등…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덮눌리는 듯한 압도감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독파 능력은 차치하고 우선 사들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상한 풍속을 먼저 습득해 버리고 말았다.
새 책을 사오면 무엇보다도 그 냄새가 좋았다.
내용을 보고 사온 것이지만 그 장정과 체재와 냄새에 한참 동안 탐닉하는 것이 버릇이었다.
이 같은 버릇은 지금도 버릴 수가 없는데, 나의 독서 능력과 책의 분량과의 언밸런스에다 더욱 기묘한 습성을 가지게 한 바탕이 되고 말았다.
첫째 나는 세 가지의 책을 한꺼번에 읽어 간다는 기묘한 방법을 모르는 사이에 터득하게 되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 전차 속이나 공원에서 산책하면서 읽을 책으로 으례 포켓 속에 문고본이 하나씩 들어 있고,
월간 잡지는 꼭 책가방 안에 들었는데 이건 좀 미안한 일이지만 수업시간에 앞의 친구의 든든한 어깨 뒤에 숨어서 읽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어젯밤에 읽다 만 두툼한 단행본이 펴진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건 대개 몇 주일씩 예정하고 덤벼든 골치 아픈 학술서적에 속하는 것인데,
이것은 나같이 인내력이 부족한 위인에겐 하나의 고역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친한 동창 G라는 친구는 머리 앞에 “1일 200페지 이상…”이란 어마어마한 간판을 붙여 놓고 머리를 동여매고 이 고역을 이겨내는 헤라클레스 같은 친구였는데 나는 왠지 그 친구의 씨름하듯 한 그 독서법이 짝없이 측은하게만 여겨졌다.
무엇이든지 즐기면서 해야 된다는 것, 또 인간의 생리와 당위(當爲)와의 쾌적한 공존공영 상태를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持論)이었기 때문에 독서의 무위이화경(無爲而化境)을 이루어 보려고 먼저 의자부터 합리적인 것을 장만했다.
첫째 쿠션이 좋아야 하고 두 팔을 쭉 펴서 괼 수 있고, 고개를 젖히면 알맞게 베개가 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낮으막한 것을 골랐다.
쿠션이 낮은 의자일수록 몸이 편하다는 것은 임어당(林語堂)의 지론인데 나는 이에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사람의 몸이란 땅에 가까워질수록 편하다는 진리는 한참 서 있다가 자리에 앉거나 누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만한 이치인 것이다.
테이블은 그저 넓을수록 좋다. 의자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명이다.
지금같이 형광등도 없는 때라 별 도리가 없이 나는 전구를 두 개 사용하기로 했다.
천장 아래에 100와트 하나, 그리고 널찍한 갓이 붙은 스탠드에 석유램프만큼 밝은 30와트가 책상 위에 하나….
놀러왔던 친구가 돌아가면 100와트와는 인연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조명 아래서 나는 이따금 둥근 천장 아래 촛불 앞에서, 고민하는 ‘파우스트’를, 때로는 포우의 처량한 ‘더 레이븐’의 정서를 연상해 보는 것이었다.
하숙은 도심지에서 수십 리 떨어진 교외의 한적한 곳을 택했음은 물론이다.
그 30와트의 스탠드 아래 펼쳐진 잔잔한 글자 위에 무시로 하루살이가 떨어져 죽었고 부나비가 날아들어 불빛을 더듬어 미치곤 했다.
그런 광경이 책을 읽던 내 눈을 멈추게 하고 일기책에 한두 구절의 철학을 적어보게도 했고, 또 괴테의 서동시집(西東詩集) 속의 저 유명한 「부나비」의 시편을 읊어보게도 했다.
3. 괴테 초상(肖像)과 더불어
나는 학생시절에 지금보다는 괴테를 무척 좋아했다. 내게는 괴테의 일본어 역 전집 외에 그의 훌륭한 초상과 석고상을 서너 개 가지고 있었다.
괴테에 홀딱 반해버린 몇 달 동안 내 방안은 괴테 일색으로 꾸며졌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이탈리아 여행을 간 그가 캄파니아의 언덕 위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는 초상화였다.
그가 로마에 와서 ‘나는 드디어 탄생했다!’고 외쳤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이 위대한 전신(轉身)과 탈피(脫皮)의 천재에 한동안 완전히 기울어지고 말았다.
나는 정말 그때에 괴테라는 천재와 참 가까이 지냈었다.
모든 작품이 일종의 그의 자서전이니만치 읽으면서 그와 그의 아름다운 애인(릴리쉐·레만)의 초상화를 번갈아 바라보고 또 읽고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나는 지금도 학생들에게 그 작자의 초상화를 보아가면서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될 수 있는 대로 그 작자 자신과의 호흡을 가깝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독서를 제외하고 또 무슨 방법으로 위대한 인격과 사귀어 볼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독서의 의의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리라고 생각한다.
흔히 독서하는데 자세를 바르게 가져야 한다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들어오는데 이것은 뭐 허리가 굽는다든가 눈이 나빠진다든가 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서를 많이 해서 불구가 된 사람을 일찍이 보지 못 했기 때문이고, 허리가 굽어질 리가 없는 것도 오른쪽으로 굽히고 한참 읽노라면 자연이 곧 왼쪽으로 굽히고 읽게 되기 마련이니 도시 허리가 굽을 사이가 없는 것이 우리 몸의 생리인 것이다.
눈이 나빠진다는 그것도 내 경험으로는 소질의 문제인 것 같다.
글은 편한 자세로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조간(朝刊)을 들고 변소로 가는 버릇은 웃을 것이 못 된다.
더구나 변소간의 몇 분이라는 시간이야말로 백 퍼센트의 독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희귀한 시간이라는 것은 많은 독서가들이 다 같이 수긍하리라고 믿는다.
호구(糊口)에 신불이 나게 쫓기는 이가 하다못해 신세 타령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시간의 공지(空地)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사람이란 모든 시간을 나의 여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바쁜 중에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공지가 매우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한가한 공지에서 진실로 글이 사람으로서 살아서 내 영혼에 통하게도 되는 것이다.
글은 곧 그 사람이므로 마음의 자세를 이렇게 가지자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는 또한 매우 따분한 것이었다. 내 안에 불꽃을 찾아 펄덕이는 저 ‘부나비’의 성급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속에 무엇인가 복욱(馥郁)하게 꽃피려는 파토스의 세계가 설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 젊음에 권태를 가르쳐 준 것도 역시 책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4. 호반의 상념
발레리는 ‘독서는 언제나 무엇인가 인내를 요구한다.
나는 항상 여기 곧 있어야 할 내 것이 더 필요하다’라는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의 정신 질서에 따라가는 대신에 뭣인가 새로 탄생하는 자기의 세계를 그리는 충동― 또는 대상의 세계가 불러일으키는 걷잡을 수 없는 생활 감정의 횡일(橫溢)― 그런 것이 무시로 가슴을 엄습하는 때가 내게도 있었다.
하숙집 근처에는 교외이기 때문에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는 호수가 있었다.
호수 옆에는 숲을 끼고 아담한 절이 있었고 그 곁에는 항상 향불 냄새가 그윽한 묘지가 있었다.
이 호반의 오솔길과 묘지와 절의 경내(境內)는 나의 일정한 산책 코스가 되었다.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지중해의 감흥」등의 상념에 매혹되었던 나는 포켓 속에 넣고 온 문고본을 푸대접하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불과 수 마일 범위의 물이 사람의 영혼을 <무한>에 대한 정서 속에 사로잡는다!’고 한 것은 보들레르의 산문시의 구절이던가….
나는 이 호숫가를 거닐며 ‘물 있는 풍경’이 주는 신비로운 이모우션 속에 시간 가는 것을 잊었다.
물가에 알 수 없는 생물들이 번식하듯이 내 속에 움트는 상념― 이를테면 아직 시구(詩句)가 되지 못한 채 몸부림치며 고민하는 모음(母音)의 세계에 내 영혼은 탄식하는 것이었다.
화구(畵具)를 팽개친 채 숲과 언덕을 방황하는 고독한 베르테르의 마음을 나는 이해했다.
또 스코틀랜드의 호반에 깃든 워드워즈의 명상… 호수를 둘러싼 슈토름, 헷세 등의 독일적인 ‘노스탤지어’… 쉴 새 없이 물결에 씻기우는 호반의 바위 위에 꽃피는 라마르틴의 애달픈 추억…등 ‘물 있는 풍경’에의 한없는 매혹이 독서 이상으로 나의 내적 생활을 상기(上氣)하게 했다.
이따금 물 위에 보트를 띄우고 힘을 들여 노를 저었다.
때로는 알몸으로 물속에 뛰어들어 신비한 호면을 끌어안았다.
발레리는 수영을 연애에 흡사한 유희라고 그랬지…. 나도 그걸 아는 듯했다.
더욱 인상에 남는 것은 호수 저쪽 언덕에 죽 늘어서서 피어있는 해바라기였고 호면에 가득히 번지는 찬란한 저녁놀의 아름다움이었다.
분명히 독서는 고달픈 인내를 강요하는 일이었고 내게 필요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 꽃피어야 하는 나의 시(詩)였고 내 생명의 연소(燃燒)였다.
책보다 더 좋은 것은 뱃전을 두드리는 물결소리였고 가슴에 가득히 안기는 호수였고 맨발로 밟는 축축한 모래였고 찬란한 저녁놀이었고 또 해바라기의 타는 얼굴이었다.
나는 강렬하게 내려 쬐는 태양 아래 아름다운 피부를 가진 알제리아의 소년에 대한 지드의 갈증(渴症)을 알았다.
이 꽃 저 꽃에서 꿀을 마시고 사는 꿀벌이 되고 싶다던 베르테르를 알았다.
그리고 또 ‘법학도 의학도 철학도 가뜩이나 신학까지도 …’ 터득한, 저 파우스트의 죄악으로의 전신(轉身)에 나는 새삼스럽게 흥분과 공명을 느끼는 것이었다.
X X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책을 힘써 읽어야 한다고….
그러나 참다운 교양이란 언제나 깊은 감동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책은 힘써 읽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는 책보다도 깊은 감동을 주는 것들이 많고 그것들을 볼 수 있는 진실한 눈이 참으로 필요하다고…. 책은 많이 깊이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생각한다.
진실한 교양이란 것은 아름다운 것을 충심으로 찬미할 수 있고 추악하고 천한 것을 또 진심으로 증오할 줄 아는 싱싱한 감정의 훈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1960.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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