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놀이 / 유공희
들국화 갈대꽃 다 시들어
황량한 들 논두덕에서
톡 톡 톡 타는 것은 불이올시다
잔인한 그 소리 웬일인지 가슴을 깎는 듯
아 이것은 미쳐서 춤추는
우리들의 지혜올시다
메마른 온갖 풀잎을 태우며
처량한 우리의 생의 광야에
기이한 상한(傷恨)을 남기고 승천하는
불은
아득한 옛날
우리들의 신성한 태(胎)의 상(像)이었나니……
황혼이 오면 무엇의 결핍이
이 온갖 광기(狂氣)를 분만하는 것이로리까!
언덕마다 어둠이 무서워
저 아이들의 울음소리… 울음소리……
방마다 푸른 등불이 떨고
사람마다 뜻없는 설움 속에 추근해질 때
아, 이것은 처량한 광야의 불놀이
권태한 손가락들이 마련한 미친 작란(作亂)이외다
생명이 본래 광명의 종족인 듯
모태를 그리어 꾸미는 불의 향연에
하늘은 어이 또한
소낙비처럼 어둠을 쏟는 것이오리까!
황혼……
얼마나 순수한 생명이
나의 작은 가슴속에 잠겼기에
이다지 어둠을 배반하는 것이오리까!
또한 지극히 귀중한 것을 태워서라도
한 떨기 불꽃을 아끼는 마음은
원래 승천해야 할 생명이
지상에 꾸미는 슬픈 비유일 따름이오리까
아, 사람이 불을 가지는 것은
얼마나 슬기로운 맵시입니까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아득히 먼 옛날 하늘에 가서
이 신기한 꽃다발을 훔치던 사나이는
한없이 원망스러운 모습……
그러나 우리는 밤이 오면 밤마다
연애처럼 그를 섬기는 귀여운 후예이외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우리는 형자(形姿)의 즐거움을 찾으리까!
아, 밤이 오면
우리는 모두 동자(童子)처럼
한 송이 천상의 전설 속에 살도다
불멸한 태양의 여정(旅情)을 타고난 우리들이기에
우리는 항상
‘푸로메테’의 피가 떨어지는 곳에 만상을 읽고
그 피가 흐르는 곳에 항상
의상의 즐거움을 찾았도다!
아, 유일한 태고의 연정(戀情)이듯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어둠속에
밤마다 우리는 얼마나 신기롭게
천상의 얘기를 추상(抽象)하는 것이오리까!
항상 새로운 기아(飢餓)를 거느리는 우리에게
그것은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원한(怨恨)의 꽃입니까!
우리가 이 신기한 꽃다발을 가지게 된 마련을
어이 다 말로 풀이하리까!
그러기에 우리의 조상이 불을 훔치고
불속에 죽던 날을 위하여
우리는 또한 제각기 작은 가슴속에 타는
한 송이에 매었도다!
아, 불꽃은 춤추고
말없는 조약돌까지도 따라서 노래하는
이것은 애달픈 우리들의 광야의 불놀이……
이때 지구는 새빨간 원한의 덩어리 되어
생명은 가장 슬기로운 맵시를
화상(火傷)에 붙였으니……
오, 그대여
광야에 이렇게 우리의 생명은 춤추며 승천하고
우리의 육체는 또한 이렇게 하여 시들어 가는 것이오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