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品과 人品 / 조 영 님
고대 시론가들은 '詩品出于人品(詩品은 人品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곧잘 하였다. 한 작가의 작품은 그 작가의 사상, 감정 그리고 인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물론 위의 말은 淸의 劉熙載(유희재)가 <藝槪, 詩槪>에서 한 말이나 중국에는 이와 유사한 이론들이 매우 많다. 淸의 施閏章(시윤장)은 '詩如其人 不可不愼(시는 그 사람과 같으므로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다)'라 하였고, 明의 田藝蘅(전예형)은 <香宇詩談(향우시담)>에서 '詩類其人(시는 그 사람의 사람됨과 비슷하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의견들은 작품 속에 투영된 세계를 바로 작가의 내면세계로 보았으며 나아가 시창작에 앞서 성정을 도야하고 인품을 청고하게 하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백과 두보와 같은 시의 대가를 보면 이백은 인물됨이 飄逸하니 그의 시 역시 飄逸하며, 두보는 충성과 의리를 돈독히 하여 그의 시는 우국충정을 드러낸 시가 많으며 또한 사람됨이 침착하기에 그의 시 역시 침착하다고 하였다. 반면에 謝靈運(사령운)같은 이는 사람됨이 소인이어서 그 문장도 역시 오만함이 나타나고, 徐陵(서릉)과 庾信(유신)같은 이는 허풍쟁이라서 그 문장도 진실성이 없고 거짓된 것이 많다고 하였다. 그래서 淸의 李調元은 <雨村詩話 >에서 '시는 인품으로써 으
뜸을 삼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이백의 <山中答俗人>이란 시를 감상하기로 하자.
청산에 사는 뜻을 내게 묻기에 問余何意住碧山
웃기만 할 뿐 대답 없어도 마음 절로 한가해라 笑而不答心自閑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흘러가나니 桃花流水杳然去
별도로 천지가 있어 인간세상 아니라네 別有天地非人間
너무나 유명한 이 칠언절구는 이백의 인생관과 그의 인품을 대변해주는 시라 할 수 있다. 세속을 떠나 산 속에 사노라니 속인은 시인에게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다.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다. 구구하게 이유를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 속은 절로 한가롭기만 하다. 붉은 복사꽃 띄운 물 아득하게 흘러가는 이곳이 인간세상 아닌 별천지이니 그것으로 여기 사는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과연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讀其詩可以知其人)'고 하였으니 이백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가 시인의 사람됨과 언제나 비슷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淸人 叫矯然(규교연)은 <發性堂詩話>에서 '詩心與人品不同(시심과 인품은 같지 않다)'라 하였으니 그 이유는 '사람은 정직하고자 하나 시가는 완곡하며, 사람은 질박하고자 하나 시가는 교묘하니 시심과 인품은 서로 같지 않아서'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止亭 南袞(남곤)이란 자가 있었다. 그의 문장은 매우 아름다워서 우리나라에서 드물다고 하는 이도 있었으나 세인들은 모두 천하게 여기고 소인으로 지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정 등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김정 등 당대의 신진사림파를 대거 숙청하였기 때문이다. 벼슬은 영의정에까지 올랐으나 훗날 관직이 삭탈되고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지은 절구 <神光寺> 6수는 모두 절창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그 중의 한 수를 소개하여 보겠다.
천 겹 문서 더미에서 몸을 빼내 千重簿領抽身出
한 칸의 절 방에 잠자리 빌려 누웠네 十笏僧房借榻眠
유월의 뜨거운 기운도 날아서 이르지 못하니 六月炎塵飛不到
절에는 별세계가 있는가 보네 上方知有別船天
신광사는 전라도 해주 북숭산에 위치한 절이다. 바쁜 공무에서 벗어나 이 곳 신광사에 이르러 좁은 절 방 한 칸을 잡고 누워있노라니 한여름 유월의 뜨거운 기운도 이곳까지 이르지 못해 시원하다. 절이 위치상 높은 곳에 있어 시원하기도 하거니와 세속과 떨어져 있어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절에 마치 별세계가 있는가보다고 하였다. 초월자의 시처럼 담백하다. 누가 이 시의 작자를 위에서 언급한 인물로 여기겠는가? 그래서 후대의 시론가들은 '그의 시문은 사람과 같지 않다'고 평가한 것 같다. 허균도 <국조시산>에 이 시를 뽑고 평하기를 '비록 시인은 증오스럽고 침을 뱉을 만한 사람이지만 시만은 아름답다'고 한 바 있다. 심정은 바로 '詩心與人品不同'의 예가 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혹자는 '詩品出于人品(詩品은 人品에서 나온다)'이라 하고 혹자는 '詩心與人品不同(시심과 인품은 같지 않다)'이라고 상반된 이론을 제기하고 있으나 기실 전자의 이론은, 詩歌는 시인의 정감의 표출이라는 중국의 전통적인 시관인 '詩言志'의 시관에 기초를 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공자가 언급한 '有德者 必有言 有言者 不必有德(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말이 있거니와 말이 있는 자라고 하여 반드시 덕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는 말은 후세의 문장가에게 文章과 德 혹은 道의 상관 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 '詩品出于人品'의 이론은 시가 창작에 있어 시인의 인격의 수양을 요구한 것이며 아울러 문학의 사상과 내용을 보다 중요시 여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詩心與人品不同'의 이론은 창작된 시가 단순히 시인의 인격의 표현물만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시 혹은 글이라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시스템의 구축물인 셈이다.
그러나 '詩品出于人品'의 이론은 공자 이후 道(=德)의 측면을 더욱 강조하여 끊임없이 논쟁이 되어 왔던 道本文末이니 以文貫道니 文者載道之器니 하는 文以載道的 문학론을 설명하는 한 이론으로 정립되었다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다.
(우이시 제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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