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한담(漢詩閑談)

一字의 묘 / 조영님

운수재 2007. 10. 21. 14:09

 

 

一字의 妙/  조 영 님

 

 

시의 묘함은 글자 하나에 달려있다.(詩妙在一字)

宋人 胡仔(호자)는 <苕溪漁隱叢話(초계어은총화)>에서 '詩句는 한 글자가 공교로우면 자연스레 빼어나게 된다. 마치 한낱의 영단으로 돌을 두드려 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라고 하여 詩句에서의 一字를 강조한 바 있다.

宋人 蔡居厚(채거후)는 <蔡寬夫詩話(채관부시화)>에서 도연명의 <飮酒> 시의

 

采菊東籬下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見南山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네

 

라는 구절을 가지고 논하기를 下句의 제3자 '見'자가 '望'자로 된 俗本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두 글자 모두 '보다'를 뜻하지만 '見'이 무심한 상태를 의미하는 반면 '望'은 무언가 뜻이 있는 상태를 의미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러니 '望'을 쓰게 되면 유유자적하며 탈속한 도연명의 서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한 글자, 그것도 비슷한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글자 한 자를 안배하는 것이 대단찮은 일 같지만 한 글자의 차이로 시의 전체적인 뜻이 바뀌게 되며 나아가 시의 工拙이 현격히 달라지게 됨을 위의 예가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거정도 <東人詩話>에 '무릇 시가 묘한 것은 한 자에 달려있다. 그래서 옛 사람은 글자 하나로써 스승을 삼았다.'라고 하였다. 이른바 '一字師'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것은 鄭谷이 齊己를 위해 시를 고쳐준 고사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唐代의 시인 鄭谷이 袁州에 있을 때 제기가 자신의 시 <早梅>를 가지고 와서 봐달라고 하자, 정곡은 시 가운데

 

前村深雪裏  앞 마을 깊은 눈 속에 덮이고,

昨夜數枝開  간밤에 몇 가지 꽃을 피웠네

 

라는 구절을 보고서 '數枝'라고 하면 '이른 매화'가 아니니 '一枝'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고 조언을 하였다. 마을이 온통 깊은 눈 속에 덮여 있는 중에 설중매가 추위를 딛고 가느다란 가지 사이로 겨우 한 두 송이 꽃을 피웠을 것이니 상황을 천착해 보아도 '一'자가 나을 듯하고, '一'자가 주는 어감 역시 산뜻함을 더하는 것 같다. 제기는 크게 감복하여 이로부터 정곡을 '一字師'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음은 <陳輔之詩話(진보지시화)>에 실려있는 이야기이다.

 

獨恨太平無一事  홀로 태평하여 일 없음을 한탄하니

江南閑殺老尙書  강남에 한가로이 지내는 늙은 상서로세.

 

위의 시는 張乖崖(장괴애)가 강남에 있을 때 지은 시인데, 宋人 蕭楚才(소초재)가 이 시를 보고서 '지금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고 공의 공명과 지위가 높고 중한데 홀로 태평을 한한다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고 '恨'자를 '幸'자로 고치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다. 이에 장괴애가 사례하며 '蕭君은 한 글자의 스승이시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一字師'와 관련되는 이야기는 많다.

雙梅堂 李詹은 郊隱 鄭以吾와 같이 시를 논하여 스스로 자랑하다가 다음의 시구를 얻었다.

 

煙橫杜子秦淮夜  연기가 비끼니 두목지의 진회의 밤이로다

月白坡仙赤壁秋  달이 밝으니 소동파의 적벽강 가을이로다.

 

위의 시를 본 교은이 여러 번 음미하다가 '籠'과 '小'를 이야기하였다. 上句의 제2자를 '籠'으로 하고 下句의 제2자를 '小'로 고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니 '연기가 비끼어 있다'는 표현보다는 '籠'에 '싸이다'의 뜻이 있으니 '연기가 자욱하다'로 하는 것이 더욱 좋으며, 밤안개가 자욱한 속에 '달이 밝다'는 표현은 상치되는 의미이니 '달이 작다'가 오히려 적절할 듯 싶다. 서거정은 이에 대해 '교은이 제시한 두 자는 앞의 시에 비하여 백 배나 뛰어나다'고 감탄하였다. 처음에 쌍매당은 교은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다가 끝내는 수긍했다고 한다.

 

牧隱이 일찍이 그의 아들 種學을 데리고 西州樓에 올랐다가

 

 서림의 돌성이 구름 끝에 들어가고                          (西林石堡入雲端)

 정자의 나무숲이 바람을 머금어 여름인데도 춥구나  (亭樹含風夏尙寒)

 

라는 시를 지었다.

돌아가는 길에 종학이 '尙'자는 '亦'자 만큼 온당하지 않은 듯 싶습니다'라고 하니 목은이 곧바로 '과연 그러하다'고 하고 빨리 가서 고치고 오라고 했다고 한다.

'尙'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시원하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면 '亦'은 정자의 나무숲에 바람이 불어서 여름철의 무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西州樓는 시원하다는 뜻을 보다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亦'자가 더 온당한 듯 싶다. 목은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들을 '一字師'로 삼은 것이니 옛 사람이 시를 짓고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玄湖瑣談(현호쇄담)>에 실려 전하는 이야기로 '일자사'와는 조금 거리가 있으나 실어본다. 沈貞이 기묘사화를 일으킨 뒤 逍遙亭에 나가 현판에 써 붙이기를

 

靑春扶社稷  청춘에 사직을 붙잡았고

白首臥江湖  머리가 허옇게 되어서는 강호에 누웠다.

 

라고 하였다. 어느 날 밤에 칼을 든 소년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협박하며 '네가 사화를 일으켜 좋은 사람은 모조리 없애서 종묘사직을 뒤집어 엎어놓고 감히 사직을 붙잡느니, 강호에 누었느니 하는 시를 지어 현판을 할 수가 있느냐? 당장에 '扶'와 '臥'자를 고치지 않으면 네 목을 베겠다'라고 하니 심정이 벌벌 떨면서 '扶'는 '危'자로 고치고, '臥'는 '蟄'자로 고치면 어떠하냐'고 하자 소년은 안 된다고 하면서 '扶'자는 '頃'자로 고치고 '臥'자는 '汚'자로 고쳐야 된다'고 했다고 한다. 심정을 조롱하고 장난한 것이 매우 재미있다.

 

이외에도 '一字之妙'나 '一字師'와 관련되는 일화는 많다. 글자 하나하나를 어떻게 조탁하느냐의 문제는 바로 살아 숨쉬는 시가 되느냐와 관계된다. 그래서 '백 번을 단련해 한 글자를 이루고, 천 번을 단련해 하나의 구를 이룬다(百煉成字 千煉成句)'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단련의 문제는 단어와 어구의 단순한 조탁을 넘어서 시 전체의 범위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 음률과 시어와의 조화를 꾀하여야 한다. 淸의 吳大受가 <詩筏>에서 '시의 명수가 시어를 다듬으면 벽에 그린 용 그림에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찍자 비늘을 꿈틀거리며 날아오르는 것처럼 된다.'라고 말한 것처럼 시 전체가 살아 꿈틀거리게 말이다.

(우이시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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