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의 茶詩․1 / 조 영 님
예로부터 선인들은 차를 즐겨 마셨다. 특히 사원에서는 부처님께 차 공양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히 여겼고 또한 수행에 도움이 된다하여 승려들이 즐겨 마시곤 했다. 그러다보니 차 겨루기인 茗戰(명전)이란 풍습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차, 물, 찻 그릇으로 품평을 하여 우승을 가리는 것이다. 또한 가까운 일본에서는 찻물을 마시고 나서 차의 산지나 이름을 알아 맞추는 놀이도 성행하였다고 한다. 한편,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차 제품을 파는 상인과 차를 달여서 찻물을 파는 茶店과 茶房이 있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리고 귀한 사람에게 차를 선물하고 차를 소재로 시를 짓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차를 소재로 한 시를 茶詩라고 한다. 여기에 고려시대의 시를 몇 편 소개한다. 無衣子로 잘 알려진 진각국사 慧諶(혜심)은 지눌의 후계자로 선풍을 진작시켰던 고승이며 차를 즐기던 다승이기도 하다. 그의 '妙高臺上作'이란 시를 감상해 보자.
한가론 고개 구름은 걷히지 않고 嶺雲閑不徹
산골 물 뭣 때문에 바삐 달리나 澗水走何忙
소나무 밑에서 솔방울 따다 松下摘松子
달인 차라 차 맛 더욱 향기롭네 烹茶茶愈香
솔방울로 차를 끓이는 이야기는 田藝衡(전예형)의 <煮泉小品>에 '만일 추운 겨울철에 솔방울을 많이 쌓아두고 차를 달이면 더욱 고상함이 갖추어진다'고 한 데서 보인다. 소나무 밑에서 딴 솔방울로 차를 끓이면 솔향 때문에 더욱 향기롭다. 고개 마루에 두둥실 떠 있는 구름, 그 옆으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솔방울을 주어다 차 끓이는 시인이 한데 어우러졌으니 이것은 선의 경지 곧 삼매의 경지에 들지 않았다면 구현하기 어려운 경계라고 이를 만하다. 고려말의 문장가이면서 성리학자인 도은 李崇仁(이숭인)은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다'고 하면서 차를 애호하였던 인물이다. 그가 삼봉 정도전에게 차 한 봉지와 안화사 샘물 한 병을 보내면서 지은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송악산 바위틈에 가늘게 흐르는 샘물 嶺山巖罅細泉榮
알겠구나. 소나무 뿌리 엉긴 곳에서 솟아남을 知自松根結處生
사모를 눌러 쓰고 앉은 한낮이 길 것 같으면 紗帽籠頭淸晝永
돌솥의 솔바람 소리 즐겨 들어보세나 好從石銚聽風聲
안화사는 개경 송악산 자하동에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샘물은 <고려도경>에 기록 될 정도로 유명하다. 안화사는 송나라 황제 휘종의 친필 편액이 있는 곳이며 단청과 구조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문을 나서면 붉은 언덕, 푸른 뫼뿌리가 가로 세로로 펼쳐져 있으며, 시내가 돌길을 따라 흐르는데 물 소리가 마치 옥 소리 같으며, 사면은 소나무 잣나무만이 하늘에 닿아 있어 그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은 마치 병풍의 그림 가운데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렇게 풍광 좋은 곳에서 나오는 샘물을 보낸 것은 더욱 맛 좋은 차를 끓이기 위함이다. 艸衣가 <茶神傳>에 '차는 물의 정신이고 물은 차의 본체다. 참된 물이 아니면 그 정신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品泉에 깊은 관심을 가졌듯이 좋은 차의 기본은 좋은 물을 가리는 것이다. 그래서 차 달이기에 알맞은 물을 보내는 풍습이 예로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당의 장우신(張又新)은 <煎茶水記>에서 '본시 차란 산지에서 달이면 좋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럴 것이 물과 흙이 차와 어울리기 때문인데, 그곳을 떠나면 물의 공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한 바 있는데 도은이 어찌 이것을 모르고 보냈겠는가? 하여튼 차 한 봉지와 샘물을 보내니 지루한 날에 끓여 드시라는 내용이니, 삼봉이 이 선물을 받고 진한 감동을 받았음은 짐작하고도 남겠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돌솥의 솔바람 소리'도 재미있다. 차를 즐기는 이들은 찻솥에서 끓는 물소리를 특히나 즐겨했다. 고려 때 김극기는 '구리병에 와르르 소나기 오는 소리'로, 李衍宗(이연종)은 '차 솥에서 불어오는 솨솨 솔바람 소리, 그 소리만 들어도 마음 맑아지네'라 하였고, 이규보는 '처음에는 마치 목멘 소리 같더니 점점 생황 소리 길게 나네'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또 '지렁이 소리, 파리소리, 봄 강물의 음향, 급히 구르는 수레바퀴, 콸콸 쏟아지는 폭포수'등 그 표현이 다양하다
다음은 權定(권정)의 시이다. 권정은 여말선초의 문인이다.
남국의 친구 새 차를 보냈구나 南國故人新寄茶
낮잠 깨어 마시는 차 그 맛 더욱 좋다지만 午窓睡起味偏多
사람의 잠 적게 한다니 도리어 싫어라 令人少睡還堪厭
잠으로 걱정 잊는데 잠 적으면 어찌하나 睡可忘憂少睡何
남녘의 친구가 차를 선물로 보내왔다. 낮잠에서 깨어 마시는 차 맛이야말로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 본인은 짐짓 싫다고 한다. 걱정 많은 이에게 잠은 유일하게 근심걱정을 잊게 해주는 것인데 차를 마셔 잠까지 적어지면 긴 밤을 어쩌란 말인가? 라고 하면서 감사하다는 말 대신 걱정이 먼저다. 그러나 어찌 차를 싫어했겠는가? 차를 마시면 잠이 적어진다는 것을 강조해서 표현한 것이리라. 차의 효능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스님이 차를 마시고 있는데 소치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라고 물으니 스님이 '이것은 차라는 것인데 세 가지의 덕이 있다오. 첫째는 잠을 쫓고, 둘째는 소화를 돕고, 셋째는 不發이 되는 것이라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소치기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이 즐거움인데 잠을 이루지 못하면 곤란하고, 조금밖에 먹지 못하는데 소화가 잘된다면 곤란합니다. 하물며 마누라를 껴안을 수가 없게 된다니 딱 질색입니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낮잠에서 깨었을 때 차 맛이 좋다'고 한 것처럼 차를 마시기에 좋은 때가 있다고 한다. 茶山은 '아름다운 아침이 열리려 할 때, 맑은 하늘에 구름이 두둥실 떠다닐 때,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밝은 달이 시냇물에 떠돌고 있을 때'라고 한 바 있다. 이렇듯 좋은 때에 바위틈으로 흐르는 산골 물 길어오고, 솔방울 따다가 불 지펴서 솔 향 가득한 차 한 잔 마시면 정말 盧仝(노동)이 말한 것처럼 '양쪽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우이시 제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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