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의「기억의 집」/ 강 성 은
이전의 나는 적어도 마음만은 풍족했다. 건축업을 하시는 아버지는 낙천적이며 술과 사람을 좋아하셔서 늘 집안엔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어머니는 엄격한 분이셨지만 묵묵히 남편과 자식들을 따르는 고전적인 여성이었다.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평이하고 순탄하게 시간의 방향을 따라 흘러갔다. 대학 졸업 후 나는 학교 강사, 학원 운영 등의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현실보다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과 동경도 갖고 있었다.
그때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았고 우리는 곧 결혼을 했다. 결혼 당시 남편은 형제들과 동업식 사업을 하고 있었다. 서울과 지방에서 공장과 몇 개 매장들을 경영․관리하며 외국과의 무역 거래도 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호주와의 수출계약이 무산되면서 결혼 1년 2개월만에 부도를 맞고 말았다. 청천벽력이었다. 출장에서 아직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남편의 일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데, 직원으로부터 나는 부도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이 아득해 왔다. 경찰과 채권자들을 피해 남편과 형제들은 미리 몸을 숨겼고, 나는 간간이 걸려오는 전화로 상황을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대책도 묘안도 없었기에 긴장은 늘 나를 따라다니고 불안과 공포가 내 주변을 맴돌았다.
연쇄부도의 끝은 마침내 구속과 지루한 법정다툼으로 이어졌고, 생전에 여장부로 자식들의 사업을 뒷바라지 해오시던 시어머니는 그 충격과 시름으로 지병이 악화되어, 아직도 도처에 산재해 있는 과제들을 남겨두고 눈을 감으시고 말았다.
우리에게 남겨진 건 빚더미와 한없는 절망뿐이었다. 도산한 우리에겐 찾아오는 지인도 친척도 없었다. 주변엔 따가운 시선만 있었다. 사는 것이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나는 점점 말이 줄고 의욕을 상실한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정 어머니마저 아버지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동생 셋을 남겨두고 세상을 뜨시니, 도대체 비극은 모조리 나를 에워싸고 있는 듯했다. 시집과 친정
어느 곳을 둘러봐도 절망과 어둠의 늪뿐이었다. 참으로 운명이란 순식간에 결정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미치는 일만 남았다. 차라리 나는 이 모든 운명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세상을 향한 증오와 삶에 대한 회의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이란 낱말을 자주 떠올렸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불쌍한 내 아버지, 나는 맏딸이었다. 오, 이 무거운 짐을 어디에 내려놓을까, 내 물음은 답이 궁색하기만 한데…… 어릴 적 나를 당신의 무릎 위에 앉혀놓고 머리를 빗겨주시던 아버지, 나는 며칠 밤을 갈등과 연민으로 꼬박 지샜다. 어느 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의 철길을 걸어 내가 찾아간 곳은 ‘최승자의 집’이었다. 나는 그랬다. 내게 희망이 없을 바에는 절망을 승화시키는 힘이라도 있어야 했다. 나는 그 힘을 최승자의 「기억의 집」에서 얻어왔다. (시집『소금와 여자』지성의 샘, 1991)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 //
도처에서 물과 바람이 새는
허공의 방에 누워 “내게 다오,
그 증오의 손길을, 복수의 꽃잎을”
노래하던 그 여자도 오래 전에
재가 되어 부스러져내렸다. //
그리하여 이것은 무엇인가
내 운명인가, 나의 꿈인가
운명이란 스스로 꾸는 꿈의 다른 이름인가 //
기억의 집에는 늘 불안한 바람이 삐걱이고
기억의 집에는 늘 불요불급한
슬픔의 세간살이들이 넘치고, //
살아있음의 내 나날 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빼야 할 것인가
자세히 보면 고요히 흔들리는 벽
더 자세히 보면 고요히 갈라지는 벽
그 속에는 소리없이 살고 있는 이들의 그림자
혹은 긴 한숨 소리 //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일찍이 나 그들 중의 하나였으며
지금도 하나지만,
잠시 눈감으면 다시 닫히는 벽,
다시 갇히는 사람들
갇히는 것은 나이지만,
벽의 안쪽도 벽, 벽의 바깥도 벽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벽이 꾸는 꿈. //
저무는 어디선가
굶주린 그리운 눈동자들이 피어나고
한평생의 꿈이 먼 별처럼
결빙해 가는 창가에서
나는 다시 한번 //
아버지의 나라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
―「기억의 집」전문
언어의 저항이 완강하다. 현실의 정서는 詩에서는 끊임없이 굴절되어 나타난다. 최승자의 시는, 시의 미덕은 해체와 위반과 파괴에 있다는 믿음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낯설고 차가운 시어들 일색이다. 이 시대 비정의 현실에는 잔혹한 리얼리즘만이 구원의 길을 열어 주리라.
내가 처음 당도한 「기억의 집」엔 늘 도처에 물과 바람이 새고 삐걱거렸다. 죽음 본능이 도사리고 있는 섬뜩한 집이었다. 이 집에 나와 똑같은 ‘딸’ 최승자가 살고 있고 그 안채에 그녀에겐 권위의 주체요, 나에겐 연민의 객체인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그리하여― 시「기억의 집」은 내가 외롭고 서러울 때마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상처받을 때마다 엄마 품을 찾듯 더듬어 가는 내 마음의 친정(親庭)이 되었고, 현실에 대항하고 울부짖고 쓰러지고 잠들고 그러면서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었다. 그 힘이 또한 나로 하여금 더 치열하게 시를 쓰게 하고 현실의 절망을 더 뜨거운 목소리로 노래하게 해 주었다.
(우이시 제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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