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의「꽃씨와 도둑」/ 윤 정 구
'시를 한 편 쓰면 얼마를 받느냐?'고 정색을 하고 물어오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나의 시가 어떠한 지 대신에, 그 시로 얼마쯤의 수입을 얻는 지가 궁금한 것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모든 행위나 능력이나 문화까지도 돈으로 환산하여 그 가치를 분명하게 따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시를 보고 값을 매기러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 싶어서 보통은 그냥 웃어넘기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시의 위의(?)를 생각해서 한 오만 원쯤 받는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러면 대체로 그들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고 말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도 그럼 세 편이면 15만 원은 되네, 술값은 되겠네. 하고 재빨리 총수입을 계산해낸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니 사실은 거의가 돈 한 푼 받지 않는다네.'라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조금 멋쩍기도 한 일이어서 나도 모르게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이 듣는 질문은 '요즈음 시는 왜 그렇게 어려운가?'이다. 공부를 할 만큼 다하고 교양이 있어 보이는 친구들도 종종 내게 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쉽게 와 닿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그런 친구들에게 내가 외워 들려주는 것이 피천득 선생님의 「꽃씨와 도둑」이다. 내가 몇 해 전 어느 출판기념회에서 선생님을 뵙고 마침 집이 같은 방향이라는 핑계로 집에 모셔다 드렸더니, 그 몇 해 전 대산문학상을 받은 시집 『생명』을 주셨는데, 그 안에 바로 이「꽃씨와 도둑」이 들어 있었다.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 가야지
―「꽃씨와 도둑」
불과 세 연, 6행, 12개 낱말로 이루어진 짧은 시였으므로, 시를 잘 외우지 못하는 나에게도 금방 외워진 「꽃씨와 도둑」은 그 뜻을 생각할수록 재미가 쏠쏠해서 나는 가끔씩 이 시를 외워보곤 한다.
달밤인가. 달빛이 도둑에게 불리할 터이므로 별빛 영롱한 밤인지도 모르지, 밤눈 밝은 도둑이 담을 넘자 환하게 꽃들이 피어 있다. 어쩌다 도둑이 되기는 하였지만 원래 선량했던 도둑은 본업을 잊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방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웬걸, 가난한 선비의 집이었던가 방안에는 책들만 가득하다. 어릴 적에야 누구든 왕자가 아니던가, 누구보다 꿈도 많고 책도 좋아했을지도 모르지. 왕자가 아니더라도 그 누가 젊은 날에 도둑이 될 꿈을 꾸었겠는가.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하고 밖으로 나서는 모습이 전혀 죄의식이 없는 단순방문자이다.
지우고 지워서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 가는 화가가 한지 위에 단순한 선 몇 줄로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듯, 단 12 낱말의 세 문장으로 이렇게도 아름답고 서정 가득한 시를 쓰시다니. 나는 단박에 매료되어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 올려보았다. 학교를 중도에서 그만두시고 따님께로 건너간 일이나, 예순이 되시면서 수 없는 청탁을 단호하게 끊으신 후 30년 동안 수필 한 편 어디에건 쓰시지 않은 일 등이 모두 예사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선생님의 부드러움 속에는 범접할 수 없는 단단함이 있어 두고두고 읽히는 수필처럼 곰씹어졌다.
시는 역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어렵게 쓰는 것은 쉽게 쓸 능력이 없기 때문은 아니냐고, 그냥 아무 욕심없이 순수해져 보라고, 그리고 정성을 가지고 기다리면 맑디맑은 시 한 줄이 쪼르륵 고일 지도 모른다고, 맘에 안 드는 줄은 가차없이 지우라고, 지우고 또 지워서 더 지울 수 없을 때 그때 남은 바로 그것이 시라고. 우리를 향하여 말하는 듯하다.
이 시는 전쟁이 끝나고 환도 후, 경희대학교 앞 회기동에 사실 때 쓰신 것이라고 한다. 그 때에 집은 흙벽돌로 지어 보잘 것 없었으나, 비교적 넓은 마당 덕분에 꽃을 많이 심고 가꾸며 살았는데 그 때에 쓰셨다고 하니, 벌써 50년 가까이 된 셈이다. 별처럼 좋은 시에 나이가 있을 리 없다. 좋은 시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 세워 놓고 문 닫기 어렵다거늘/ 나비 같이 비에 젖어 찾아온 그를/ 잘 가라 한 마디로 보내었느니
의 「후회」나,
오늘도 강물에/ 띄웠어요// 쓰기는 했지만/ 부칠 곳 없어// 흐르는 물 위에/ 던졌어요
의 「편지」처럼, 선생님의 시는 모두가 쉽고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의 하나는 쉬운 시를 쓰는 일일 것이다. 나 역시 늘 맘속으로는 짧고 간명한 시가 가장 좋은 시이지 하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짧고 쉬운 시란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절감하게 된다. 어쩌면 짧고 쉬운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에 길고 어렵게 쓰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우이시 제159호)
'나를 사로잡은 한 편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하운의 <전라도 길> / 김석환 (0) | 2007.11.08 |
---|---|
김명인의 <너와집 한 채> / 임동윤 (0) | 2007.11.07 |
윤동주의 <서시> / 장태숙 (0) | 2007.11.05 |
최승자의 <기억의 집> / 강성은 (0) | 2007.11.03 |
윤동주의 <길> / 박정순 (0) | 2007.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