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시와 어떻게 만날까
조 성 심(시인)
지난 8월 18일.
그 전날까지 서울에서는 불볕더위가 연일 이어져서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었다. 폭우가 쏟아진다는 뉴스가 오히려 반가웠고 이 비로 여름은 가을과 손을 잡았다. 버스 한 대 가득 들어찬 문학기행팀. 빗속을 뚫고 달리면서 삶을 돌아볼 영혼의 비를 기대하는 그들의 열기로 차창은 뿌옇게 흐려지곤 했다.
그날 영월의 김삿갓 문학관에서 가진 강연에서 특별 손님이자 강사로 오신 이생진 시인님은 ‘김삿갓과 황진이에 관한 시, 시조’라는 주제로 말씀을 하셨다.
이 날도 이 시인님은 삿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짚신까지 신은 너무 멋진(?) 김삿갓의 모습으로 우리를 데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김삿갓의 영혼을 불러내 함께 하였다.
이 시인님은 강의에서 ‘시의 현장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김삿갓의 방랑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닌 운명적인 것이었지만 그의 방랑과 시는 뗄 수 없는 관계였고 그에게 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비참한 여건에서도 자살하지 않고 57세까지 살 수 있었다는 것. 김삿갓의 시가 오늘날까지 사랑을 받는 것은 민중 속에 파고든 현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일본의 하이꾸의 작가 바쇼는 짧은 하이꾸를 쓰기 위해 6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다는 것. 이런 현장성이야말로 시에 생명력을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이 시인님은 그 연세(선생님이 강연 시작 무렵 직접 연세를 말씀하셨다)에도 불구하고 직접 소도구와 의상을 갖추어 무대 위에서 열연을 하며 관객과 하나된 시간이야말로 치열한 시의 현장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날 이 시인님은 몸으로 시를 쓰셨다. 님의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되는 시간이었다.
시인이 시에 현장성을 살린다는 것은 무엇일가?
김삿갓의 방랑생활은 그대로 시가 되었고 바쇼는 하이꾸를 쓰기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시인들은 시를 쓰기 위해 삶의 다양한 면을 체험하기도 하고 시의 소재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고흐는 들에서 수확하는 농부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거센 바람이 부는 날이면 캔버스를 나무에 묶고 스케치하기를 몇 번씩 되풀이하며 결코 일하는 농부보다 편안하게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고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작품 제작에서의 현장성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 말하였다. 온갖 사건이 현장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 먼지나 모래는 말할 것도 없고 파리 떼까지 쫓아다니면서 몇 시간씩 황야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작가가 되려는 그의 여동생에게는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해라. 많이 즐기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 힘을 기르고 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글을 쓰기 위한 최고의 공부이다.’라고 편지를 보낸다.
시를 쓰는 일은 살아가는 일의 한 방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우리 삶의 아픈 모습, 추한 모습도 시로 그려져야 한다. 내가 숨쉬고 있는 한 나는 내 주변의 모든 것에서 분리될 수 없다. 내게 기쁨을 주고 때론 눈물을 흘리게 했던 이들, 때론 내 에너지를 바닥나게 만드는 이들이 있기에 나는 시를 쓸 이유를 갖는다.
나와 함께 있는 그대는/ 이 시대를 사는 나의 동반자.
십 년 고개 몇 번만 지나도/ 까맣게 사라져버릴 우리.
함께 숨쉬고/ 함께 고뇌하며/ 함께 부대끼는
그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리/ 그리고 고마워하리.
―졸시 「동반자」일부
서른세 살의 나이로 세상은 뜬 지 십 년도 넘었지만 김귀화의 유고시집 『어느 지상에서의 하루』를 읽다 보면 그녀의 시 구절은 찬물 한 대접을 들이킨 것 마냥 무딘 내 감성을 일깨운다.
오늘도 마지막 날같이 살다 보면/타인도 이승의 마지막 사람같이 대하다 보면/
가슴 아픈 일도 안타까운 일도 없을 터인데
―김귀화의 「윤회의 굴레」일부
시가 누군가의 가슴에 닿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고 시인들은 절망하기도 한다.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삶에 지칠 때면 언제든 도시를 벗어나려 애를 쓴다. 탈도시의 염원만큼 기실 마음속에서는 시를 찾고 있음이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시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가슴으로 시를 만날 수 있도록 시인의 펜이 더 뜨거워져야 한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거기에 있었다
도시의 가장 낮은 곳 지하도 계단에 앉아
누추한 몸뚱이로 웃고 있었다
도시인들의 사막 같은 무관심에 대하여
그들만의 풍요로운 쇼핑백에 대하여
늘 조용히 용서하고 있었다
그는 욕심 없이 하루 분의 양식을 얻어먹고
어둔 하늘을 덮고 자면서도
굶주린 모기들에게는
따뜻한 피를 나누어 주었다
―강만의「지하도 예수」일부
시에 현장성을 갖는다는 것은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과 사물에 보다더 예민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민해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좀더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꽃은 향기로 서로를 느끼고 인간은 말이나 숨결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한다. 말이야 내 입에서 내가 조정할 수 있지만 숨결로 어떻게 서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서로에게 다가 오는 눈빛, 몸짓, 생각들이 아닐까 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서 느낌을 갖기 위해서야말로 그를 위해 내 모든 감성을 예민하게 열어야 되지 않을까?'에서 수행을 하는 일도 결국은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일임을 말하고 있다.
더욱 더 혹독한 날들이 다가온다.
판결의 파기로 유예된 시간이 지평선에 나타난다.
이제 곧 그대는 신발을 동여신고/ 개들을 농가의 습지로 다시 쫓아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물고기의 내장들이 바람에 냉각되었기 때문이다.
초라하게 루우핀의 빛이 타고 있다.
그대의 시선이 안개 속에 자국을 남기니,
판결의 파기로 유예된 시간이/ 지평선에 나타난다.
-중략-
돌아보지 말아라.
그대의 신발을 동여매고/개들을 쫓아보내라.
물고기들은 바다로 던져버리라.
루우핀의 빛을 꺼버리라.
보다 혹독한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잉게보르그 바하만의「유예된 시간」일부
우리가 지상에서 쓸 수 있는 시간은 무한정 주어져 있지 않다. 언젠가는 올 끝을 유예시켜 놓
은 상태이다. 그 끝은 누구에게도 혹독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 혹독함을 피할 수 없기에 우리는 신발끈을 동여매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시인으로서 시를 쓸 수 있는 삶을, 아니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내게 유예된 시간 안에서 내가 쓰는 시는 과연 몇 편이나 사람들의 가슴과 만날 수 있을까가 시를 쓸 때마다 주어진 숙제이다. 그래서 내 시는 무수히 잘리고 버려지고 잊혀져 간다.
내 마음을 재는
가혹한
자 때문에
나는
자꾸 가위질 당합니다.
―졸시「자」전문
그러고도 내 손을 거쳐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서는 것들이 단순히 글자로서가 아닌 감히 시라는 명분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시를 쓸 때는 벼랑끝에 선다.
어느 사물을 대하든 누구를 만나든 예민한 마음을 기울인다면 그가 지닌 귀한 뜻과 정서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주는 얘기와 빛깔을 잡아 시를 쓸 때 뭇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사람들은 가슴으로 시를 만날 수 있으리라.
(우이시 제2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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