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

<닭똥> / 임보

운수재 2008. 1. 27. 12:44

 

 

<닭똥>  /   임보

 

 

<닭똥>이라는 국산 영화가 있다

이 작품이 처음 상영되었을 때

영화평론가들은 한결같이

허황된 환상이라고 내돌렸다

관중들도 덩달아 재미없다고 외면했다

 

다만

서울의 한 순진한 교사가

이 영화를 보고

먼 낙도의 외로운 초등학교로

짐을 싸들고 떠났다

 

<닭똥>을 만든 영화사는

죽을 쒔다고 투덜거렸다

주연급 배우들은

다음의 일거리를 못 얻어 울상이었고

감독은 소주를 마시며

고독을 달랬다

 

그런데

한 일 년쯤 지난 후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베니스 비엔나레 영화제에서

<닭똥>에게 그랑쁘리를 씌웠다

 

이 뉴스가 온 세계 통신사들을

뒤흔들었을 때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극장들은 서로 <닭똥>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였고

군중들은 <닭똥>을 보려고

새벽부터 장사진을 쳤다

 

그러자

평론가 양반들도 남뒤질세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닭똥>의 모든 스탭들을 칭찬했다

 

감독은 여전히 소줏병을 기울이면서

<닭똥>들이나 먹어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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