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똥> / 임보
<닭똥>이라는 국산 영화가 있다
이 작품이 처음 상영되었을 때
영화평론가들은 한결같이
허황된 환상이라고 내돌렸다
관중들도 덩달아 재미없다고 외면했다
다만
서울의 한 순진한 교사가
이 영화를 보고
먼 낙도의 외로운 초등학교로
짐을 싸들고 떠났다
<닭똥>을 만든 영화사는
죽을 쒔다고 투덜거렸다
주연급 배우들은
다음의 일거리를 못 얻어 울상이었고
감독은 소주를 마시며
고독을 달랬다
그런데
한 일 년쯤 지난 후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베니스 비엔나레 영화제에서
<닭똥>에게 그랑쁘리를 씌웠다
이 뉴스가 온 세계 통신사들을
뒤흔들었을 때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극장들은 서로 <닭똥>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였고
군중들은 <닭똥>을 보려고
새벽부터 장사진을 쳤다
그러자
평론가 양반들도 남뒤질세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닭똥>의 모든 스탭들을 칭찬했다
감독은 여전히 소줏병을 기울이면서
<닭똥>들이나 먹어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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