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여, 부끄러워라!
임 보
2008년 2월 10일 밤과 11일 새벽 사이
대한민국의 문, 한민족의 얼인 숭례문이
우리의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세상 사람들은 화마가 앗아간 것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스스로 분신(焚身)했는 지도 모른다
반만 년 파란만장의 역사를 짊어지고
빌딩의 숲속에서 홀로 버티기 힘겨워
그렇게라도 해서 백의민족의 정기를 일깨우려 했던가?
햄버거 콜라가 우리의 식탁을 지배하고
양복에 넥타이가 우리의 목을 졸라매고
자동차와 아파트들이 이 땅을 점령하는
저 서풍의 격랑 속에 정신을 잃고 있는 오늘
우리의 부모를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듯
아니,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팽개치듯
그 동안 우리는 뿌리를 잊고 미래를 망각했다
먹고 사는 데만 급급해서
얼마나 허둥대며 정신을 잃었던가?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그것이 수억 달러의 보석함이었다면
얼마나 애지중지 잘 지켰겠는가?
그러나 나무가 보석보다 귀하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아,
우리들은 다 공범,
아, 이별이여!
이처럼 처연하고 큰 이별이 어디 있는가?
다시 세워지는 숭례문은
이제 숭례문이 아니다.
'신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물을 씹으며 / 임보 (0) | 2008.05.05 |
---|---|
미친 시들 / 임보 (0) | 2008.05.04 |
제야의 참회 / 임보 (0) | 2008.01.02 |
한 게으름뱅이의 독백 / 임보 (0) | 2007.11.01 |
사자와 사람 / 임보 (0) | 2007.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