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숭례문이여. 부끄러워라!

운수재 2008. 2. 12. 10:33

 

숭례문이여, 부끄러워라!

 

                                                                                 임 보

 

2008년 2월 10일 밤과 11일 새벽 사이

대한민국의 문, 한민족의 얼인 숭례문이

우리의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세상 사람들은 화마가 앗아간 것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스스로 분신(焚身)했는 지도 모른다

 

반만 년 파란만장의 역사를 짊어지고

빌딩의 숲속에서 홀로 버티기 힘겨워

그렇게라도 해서 백의민족의 정기를 일깨우려 했던가?

 

햄버거 콜라가 우리의 식탁을 지배하고

양복에 넥타이가 우리의 목을 졸라매고

자동차와 아파트들이 이 땅을 점령하는

저 서풍의 격랑 속에 정신을 잃고 있는 오늘

 

우리의 부모를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듯

아니,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팽개치듯

그 동안 우리는 뿌리를 잊고 미래를 망각했다

먹고 사는 데만 급급해서

얼마나 허둥대며 정신을 잃었던가?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그것이 수억 달러의 보석함이었다면

얼마나 애지중지 잘 지켰겠는가?

그러나 나무가 보석보다 귀하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아,

우리들은 다 공범,

 

아, 이별이여!

이처럼 처연하고 큰 이별이 어디 있는가?

다시 세워지는 숭례문은

이제 숭례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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