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곡(鎭魂曲) / 임보
고속도로를 달려온 날
내 차의 앞 범퍼를 보면
유혈낭자 말이 아니다
수천의 시체들이 매달려 있는
아비규환의 지옥이다
하루살이, 날파리, 이름 모를 곤충들
그들의 평화로운 무도회에
나는 예고도 없이 돌진해 들었으리
일순에 달려든 거대한 괴물에 부딪혀
속수무책 피하지도 못하고 횡사한 그들
얼마나 황당했으리
그들 가운데는
새끼들을 데불고 나들이하는 엄마도 있었으리
귀가하는 남편을 마중하러 나온 아내도
이제 막 초야를 서두르는 청춘남녀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영아들도 있었으리
이들의 원혼을 어떻게 달랜단 말인가.
나는 살상자
수천의 생명을 도륙한 염라의 마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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