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재 시집 해설]
순금의 시적 감각
임 보(시인)
한수재 시인이 처녀시집을 간행한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나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지 않다.
한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였다.
그 사이트는 등단시인의 코너와 비등단인의 코너가 따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궁금해서 문학지망생들이 활동하고 있는 비등단인 코너에 들어가 보았다.
그랬더니 한 여성이 신데렐라처럼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가 바로 한수재라는 사람이어서 그의 작품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선배지만 친구처럼 막역하게 지낸 이승만 평론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내용은 자신의 며느리가 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한번 살펴봐 달라는 것이었다.
얘기를 들어보았더니 그의 며느리는 내가 이미 눈여겨보고 있는 바로 그 한수재였던 것이다.
한수재의 작품이 기성시인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나는 그에게 등단의 의사가 없는가고 이메일을 통해 물어 보았다.
내가 아는 문예지의 주간들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그런 수준의 작품이면 추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한수재의 대답은 '노'였다.
자신의 작품이 아직 모자란다고 겸손하게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현 문단의 풍토에 별로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줏대가 그 정도면 앞으로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우이시회>(지금은 <우리시회>)라는 기성시인만을 고집하지 않는 시모임이 있음을 설명하고, 그를 설득하여 우이시회 회원으로 영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시작(詩作) 활동은 소위 등단이라는 제도적 관문에 구애받지 않고 시작되었다.
2003년 7월의 일이니 그때를 한수재의 문단 데뷔 년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 동안 우리시회에서 함께 활동을 하며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아 왔다.
예민한 정서를 지닌 그녀는 상냥하면서도 뚜렷한 개성을 갖춘 속이 든 여자다.
수년 전부터 시집 발간을 독려했는데도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의 처녀시집 발간이 이렇게 늦어진 것은 그의 겸손보다는 자존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마음 내키는 글이 아니면 시집으로 묶지 않겠다는 무자기(毋自欺)의 결벽증 말이다.
작품이 모이기가 무섭게 시집으로 묶어내는 요즈음의 풍토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건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수재 작품의 외형적 특성은 길지 않음에 있다. 10행 내외의 소품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오래 전 너는
꿈에서 꿈으로
애닯고 섧더니
천지 사이
망막한
그 후
방해 받지 않는
그리움이 되었다
시원히도 나의 것이 되었다
――「눈雪―헤어짐」 전문
이런 식의 소품을 만드는 것이 그의 특기다.
분량이 짧은 그의 작품들은 읽기에 부담이 없어 좋다.
그렇다고 만만히 보고 섣불리 덤비다가는 큰 코 다친다.
그의 시는 금강석처럼 단단해서 쉽게 이빨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짧게 쓴 글이 아니라 응축해서 만들어 낸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눈」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부제인 ‘헤어짐’이 곧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별을 겪은 이의 마음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처음에는 오매불망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이 제1연 ‘꿈에서 꿈으로/ 애닯고 섧더니’의 상태다.
그러나 세상과 더불어 부대끼며 살다 보면 그에 대한 뜨거운 감정도 점차 식어서 희석된다.
그것이 제2연의 ‘천지 사이/ 아득한’ 정황이리라.
그러나 인생에서 완전히 잊히는 것은 없다.
중년에 이르러 과거를 뒤돌아보노라면 추억의 화로에 그리움의 불씨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젊은 날의 격정을 다 벗은 것이어서 이젠 위험하지 않다.
그 그리움은 애증이 다 휘발한 것이어서 부담없이 반추할 수 있다.
제3연의 ‘방해 받지 않는/ 시원한 그리움’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눈이 지상을 덮듯 시간은 과거를 그렇게 다 덮는다.
‘눈’은 시간의 상징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시간(눈)에 의해 묻힌 과거(설원)를 마음의 동요 없이 바라다보는 화자의 초연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한수재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봄보다는 가을을 여름보다는 겨울을 좋아한 시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겨울보다도 가을을 압도적으로 사랑한다.
그의 체질은 양이기보다는 음 쪽인 것 같다.
생성보다는 소멸, 만남보다는 이별, 피는 꽃보다는 지는 낙엽을 사랑한다.
이 시집에는 연작시 「가을 연가」를 비롯해서 가을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이 실려 있다.
애타게 부르지 않아도
부르는 것마다 애가 타는 가을에는
짙어가는 흙냄새 하늘하늘 날아가는
저녁 무렵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불러주는 사람 없어도 들리는
소리마다 뒤돌아보는 가을에는
산 것과 죽은 것 까실까실 눈을 뜨는
기적 같은 노을빛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디로 닿아야 만날 수 있는지
몸으로 가는 몸을 탓할 수 없는 가을에는
우리, 헝클어진 낙엽을 보듯 닮아서 아픈
오로지 그 마음으로만 타고 싶습니다.
―「편지」 전문
가을은 화자의 마음을 애타게 한다. 특히 석양이 더욱 그렇다.
누가 부르는 것도 아닌데, 또한 불러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조급하기만 하다.
‘가을’이나 ‘석양’이나 다 소멸의 시간이다.
그런 소멸의 시간에 서게 되면 삶과 죽음에 대해 새롭게 눈이 열린다.
그는 이러한 정황을 ‘산 것과 죽은 것 까실까실 눈을 뜨는’이라고 아주 특유한 감각으로 그려낸다.
이어서 마지막 연에서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읊고 있다.
‘몸으로 가는 몸’이란 소멸하는 것들에 대해 갖게 되는 화자의 동병상련의 정을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인간도 저 부서지는 낙엽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찌 낙엽을 껴안고 싶지 않겠는가.
이 「편지」는 어느 특정인을 상대로 한 서한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향한 독백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한수재의 낙엽에 대한 연민의 정은 「낙엽」이라는 짧은 시에 극적으로 잘 담겨 있다.
나의 일기에서 그를 지우고 나면/ 남아 있는/ 내가 없네.
―「낙엽」전문
그의 가을 사랑은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이며 ‘사라져 가는 것들’에게 쏟는 애정이다.
그의 휴머니즘 정신이 인간을 넘어 사물로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병고에 시달리면서 얻은 것으로 보인 몇 편의 연작들이 눈에 띈다. 그 중 한 편을 보기로 하자.
이미 오래 전부터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病
피었다고 할까
그렇게나 문드러졌다고 할까
상관없이 타는 목숨
꿈꾸는 가장자리
―「병실에서 3 ―단풍」 전문
병은 인과의 원리로 찾아온 것이므로 거역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담담이 받아들인다.
너그럽게 병마를 수용하는 그의 태도가 놀랍다.
병은 삶의 과로에서 육신이 문드러짐으로 일어난 현상임을 화자는 자인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발병을 ‘피었다’라고 미화해서 표현한다.
꽃이 피듯, 아니 단풍이 붉게 물들어 피어나듯 병은 육신에 뿌리를 내리고 곱게 핀 것으로 생각한다.
소진되어 가는 목숨을 느끼면서도 ‘상관없다’고 남의 일처럼 초연하다.
어쩌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극복하려는 것 같다.
이 작품의 부제를 ‘단풍’으로 단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가을에 탐닉해 있는 시인인가를 헤아릴 수 있지 않는가?
한편 한수재 시인은 요즈음 흙에 마음을 쏟고 있다.
도예에 흠뻑 빠져 도자기를 열심히 빚기도 한다.
다음의 작품을 보게 되면 그가 얼마나 도자기에 심취하고 있는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닿는 손길로는
더없는 부드러움이고저
한 밤을 고스란히 나누고
언약 위에 세운 몸이 될까
흙빛 위에 맑은 밤
마음을 빚어 네게 가듯
다완茶碗 가득
홀로 오는 새벽
아무도 모르게
두고두고 좋아라
―「흙으로 -茶碗」전문
부드러운 흙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면서 밤을 새워 다완을 빚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흙은 얼마나 순박하고 정직한가.
초목을 길러내는 일도 그렇지만 도공의 손에 몸을 맡기어 그릇으로 태어나는 것도 또한 그렇다.
배반과 아첨을 모르는 순박한 흙을 만지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리라.
어느 성인은 물에서 지혜를 배우고 산에서 어짊을 배운다고 했지만, 하나를 더하여 흙에서 순박을 익힌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시집의 표제시 「싶다가도」에 대해서는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우이시』에 내가 적은 바 있는 짤막한 글을 옮기고자 한다.
시가 굳이 길어야 할 까닭은 없다. 글의 아름다움은 그 길고 짧음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긴 글이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짜증스럽지만, 짧은 글도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면 보석처럼 곱게 느껴진다. 시는 어쩌면 짧을수록 좋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난호를 읽으면서 나는 한 포기 작은 ‘제비꽃’처럼 앙증스럽게 고운 소품을 발견하고 잠시 미소를 금치 못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적시고 싶다가도,//
누군가의 끊임없음이고 싶다가도,//
남보라빛 숨은 제비꽃과 마주칠 때면//
그처럼 눈과 눈에 녹고 싶은 마음이여,//
아예,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여
「싶다가도」 전문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족에게, 나아가서는 세상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 오래오래 기억되었으면 한다. 이 시의 화자도 평소에 그런 꿈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길가의 풀밭에 숨어서 피어있는 한 포기 제비꽃을 발견한다. 화자는 한동안 남보랏빛 제비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바라다보면서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존재의 가치는 반드시 거대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또한 남을 변화시키는 능동적인 삶보다도 설탕처럼 자신을 소진시키는 피동적인 삶도 아름답다는 것을 제비꽃에게서 배운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이란 참 부질없어 그렇게 하고 ‘싶다가도’ 또 저렇게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도인지 참 어렵고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끊임없는 망설임의 되풀이가 우리들의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이시』제216호(2006. 6.)
세상을 바라다보는 한수재의 눈은 깊고 푸르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속에 서려 있는 시정은 보석처럼 빛난다.
한편 그는 천부적인 시적 감각을 지니고 있어서 적절한 언어로 표상해 내는 능력이 범상치 않다.
이 처녀시집 발간을 계기로 해서 앞으로 그가 지닌 순금의 시적 감각이 더 빛을 발할 수 있게 되기를 크게 기대하며 문운을 빈다.
'임보의 산문들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의 한 독자에게 (0) | 2009.05.01 |
---|---|
감동성의 조건---꽃과 벌 (0) | 2009.03.14 |
신춘문예 유감 (0) | 2009.01.09 |
현대시 운율 필요없는가? / 임보 (0) | 2008.09.17 |
이규보의 <논시(論詩)> / 임보 (0) | 2008.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