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의 산문들/에세이

감동성의 조건---꽃과 벌

운수재 2009. 3. 14. 07:09

 

 

 

꽃과 벌

―감동성의 조건

 

                                                                                                                                              임 보(시인)

 

특정한 꽃에는 특정한 벌만 날아든다.

호박꽃에는 호박벌이 날아들고, 매화꽃에는 매화벌이 찾아온다.

큰 꽃에는 큰 벌이, 작은 꽃에는 작은 벌이 즐겨 찾는다.

화려한 빛깔의 꽃은 시각이 민감한 벌들과 친하고, 향기가 짙은 꽃은 후각이 예민한 벌들과 가깝다.

꽃이 그렇게 피어 있어서 그러한 벌들이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벌들의 구미에 맞추어 꽃들이 그렇게 피어난 것인지,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수만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살아오는 가운데 서로가 맞도록 변해 그런 짝들을 이루게 되었을지 모른다.

 

사람의 취향도 벌처럼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그림을 좋아하기도 한다.

식도락가가 있는가 하면 스포츠 광도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결같지 않다.

어떤 이는 고전음악을, 어떤 이는 경음악을…. 고전음악 가운데서도 실내악을, 실내악 가운데서도 바이올린 곡을…. 이렇게 인간의 취향은 천차만별하게 갈라진다.

 

시의 경우도 다를 바가 없다.

서정적인 시를 즐겨 쓰는 시인도 있고, 교훈적인 시를 즐겨 쓰는 시인도 있다.

목월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이상의 시에 관심을 가진 독자도 없지 않다.

그러니 어떤 시가 독자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게 규정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어떤 음식이 맛있는 음식인가를 판단하는 일처럼 개인의 구미와 취향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꽃이 있을 수 있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음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예술 작품도 많은 이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경우를 생각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렇다면 시의 경우에 있어서 보다 많은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도록 하자.

 

1. 창조성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아직 누구도 말한 바 없는 새로운 얘기를, 아직 누구도 표현한 바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낸다면 이는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적어도 이야깃거리가 새롭든지 아니면 이야기 짓이 새롭든지, 내용과 형식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새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창조성이 없는 글은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다.

창조성은 예술의 구비 조건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2. 심미성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 역시 내용과 형식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예술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미에 대한 개념과 범주가 간단하진 않지만, 나는 미를 인간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구조로 파악한다.

꽃이 모든 이에게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아름다움을 지녔듯이 균형과 조화와 질서가 빚어내는 어떤 미적 구조를 작품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독자의 심금을 울리기가 어렵다.

 

3. 진실성

 

참된 얘기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몸소 체험한 얘기가 감동적으로 가 닿는 것은 그 안에 ‘진실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직접 체험한 내용이 아니라면 ‘신념’에서 우러나온 것이어야 한다.

그 속에 자리한 내면의 진솔함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진실성이 결여된 어떠한 감언이설도 독자를 움직일 수 없다.

가식적인 미사여구보다 꾸밈이 없는 눌언(訥言)이 오히려 가슴에 더 다가온 것은 바로 그 진실성 때문이다.

 

4. 윤리성

 

글쓴이는 윤리적 가치관을 잃어서는 안 된다.

모든 작품이 도덕적일 수는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작자는 선(善)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인간은 선 지향의 본성을 지녔다. 사람들이 권선징악의 얘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작품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독자의 호응을 얻는 방법을 제시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작품의 존재 가치를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작품이 아니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5. 흥미성

 

모든 작품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음악이나 미술을 상상해 보라. 누가 그런 음악과 미술을 찾겠는가?

시도 재미가 있어야 읽힌다. 물론 통속소설처럼 흥미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재미있게 읽힌 순수소설처럼 시도 그런 흥미로운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시가 소설과는 달리 대중들로부터 이렇게 멀어진 요인의 하나는 바로 흥미의 상실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입맛을 당기게 하는 시의 고명은 ‘재미’다. 재미있는 시집이 있다면 독자들도 소설 못지않게 밤을 세워가며 읽을 것이 아닌가.

 

시에 감동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조건으로 나는 앞의 다섯 가지를 지적했다.

이를 다시 진(眞)·선(善)·미(美)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도 있겠다.

 

소재의 진실성(眞)--┐                           ┌--창조성

주제의 윤리성(善)--│―→ 감동적인 시 ←―│

표현의 심미성(美)--┙                           └--흥미성

 

물론 이밖에도 여러 가지 조건이 없지 않으리라.

이 글의 모두에서 거론했듯이 특정한 꽃에 특정한 벌이 찾아든 것처럼 사람들의 기호도 다양해서 좋아하는 작품이 한결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편적인 기호(嗜好)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추출해 본 것이다.

독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 향기로운 시의 꽃들이 많이 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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