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기자에게/ 임보
K 기자,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나요?
근래엔 귀하가 쓴 문화면 기사를 읽을 수가 없어 적잖이 아쉽습니다.
사물을 보는 예리한 안목과 생동감이 넘치는 문장은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꼭 한번 만난 적이 있지요.
귀하도 아마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몇 해 전 내 단시집(短詩集) 『운주천불』을 간행했을 무렵입니다.
귀하는 지방에 있는 내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 만나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문사 문화부로 우송했던 내 시집이 매일 산더미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많은 출판물들 틈에서 어쩌다 귀하의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 주말에 서울 우이동 인근의 작은 찻집에서 만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귀하는 출퇴근 시간 전철 속에서 재미있게 읽었다며 내 시집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접혀 있는 책갈피들을 들춰 가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해 왔습니다.
사진 기자까지 대동하고 와서 몇 시간 동안 열심히 취재를 했습니다.
끝날 때쯤이 마침 저녁 무렵이어서 나는 간단한 식사라도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만 귀하는 완강히 거절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내 얼굴과 함께 『운주천불』에 관한 기사가 큼지막하게 보도되었습니다.
『운주천불』은 <우이동사람들>이라고 하는 이름 없는 출판사가 만들어 냈습니다.
<우이동사람들>은 말이 출판사지 사무실도 제대로 못 갖추고 있는, 시인들 몇 사람이 만든 이름뿐인 출판사입니다.
이 출판사가 생겨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시인들의 시집을 선뜻 간행해줄 출판사는 거의 없습니다.
나도 과거에 명망 있는 몇 출판사에 출판 의뢰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그 해의 출판계획은 이미 다 짜여 있어서 곤란하니 다음 기회에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절의 뜻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챈 나는 기왕 자비출판을 할 것이면 우리가 만든 출판사의 이름으로 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몇 시인들이 뜻을 모아 만든 것이 바로 <우이동사람들>입니다.
이 이름으로 10여 권의 시집을 간행했습니다. 『운주천불』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K 기자, 내가 오늘 새삼스럽게 출판사 얘기를 꺼낸 것은 <우이동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출판사의 이름에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고 책을 대해준 귀하의 안목을 높이 사고자 해서입니다.
오늘의 실정이 어떻습니까?
귀하도 잘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만 대형 출판사들의 농간에 매스컴의 문화부 기자들이 얼마나 농락당하고 있습니까?
문화란의 기사들이 몇 출판사들의 광고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지럽게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큰 출판사가 간행한 많은 책들 가운데는 양서(良書)도 적지 않습니다.
양서를 식별하여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은 문화부 기자의 당연한 몫이지요.
다만 상업적인 의도로 간행된 책에 대해 부화뇌동하는 기사를 문제삼는 것입니다.
오늘의 매스컴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몇 줄의 기사가 무명작가를 하루아침에 유명하게 만들 수도 있고, 잘 팔리지 않은 책을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려놓기도 합니다.
그러니 비록 안목을 갖춘 기자라 할지라도 의지가 굳지 못하면 주위의 많은 유혹으로부터 쉽게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하는 보기 드문 기자였습니다. 문화에 대한 안목도 깊고 자기를 지키는 고집도 적지 않아 보였습니다.
식자들 사이에서는 기자의 전문성에 관하여 자주 거론하기도 합니다.
기자들 역시 자기 분야에서 학자들 못지않은 넓고 깊은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문제를 다루게 될 경우에도 심도 있는 취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문화부, 그 중에서도 특히 문학 분야에서 그런 전문성(안목과 지식과 문장력)을 갖춘 기자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타 분야에 비해 문학이 별 볼 일 없는 곳이라고 판단되어 문학전문기자를 지망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거론한 바 있습니다만 오늘 날 매스컴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돌아가는 세상의 형편을 그때그때 신속하게 일러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정치가나 실업가 등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발언이 다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오늘의 언론매체들은 대중들의 이목을 장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정부기관이나 교육기관도 갖지 못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언론기관은 단순한 보도의 기능을 넘어서 언중들을 긍정적으로 교화시켜야 하는 중요한 책무를 스스로 통감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사설이나 칼럼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교화의 기능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자연스럽게 언중을 계도해 나갈 수 있는 대표적인 부처는 역시 문화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중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감각을 심어주고, 삶의 질과 가치에 대해서 일깨워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문화부 가운데서도 특히 ‘출판’에 관계하는 기자들의 몫이 막중하다고 봅니다.
출판물이란 곧 당대 정신 활동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 가운데는 세상을 어지럽히는 수준미달의 쓰레기도 적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문화적 생산물을 식별하여 대중들에게 안내하는 일이 더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K 기자, 귀하는 독자들이 존경하는 몇 안 되는 능력 있는 기자 중의 한 분입니다.
귀하는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한 유능한 작가와 작품을 찾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대형 출판사가 간행한 상업성 출판물에 대해 광고성 기사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보는 날카로운 안목을 지니고 있고, 가슴에 파고드는 감동적인 문장력을 갖추고도 있습니다.
또한 비리에 타협하지 않는 곧은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당신 같은 이를 두고 가히 명기자라고 이를 만합니다.
그런데 지금 귀하는 어디 있습니까?
혹 못된 자들의 모함에 밀려 자리를 옮긴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서 문화부로 다시 돌아와 감동적인 필봉을 날리시기 바랍니다.
건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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