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타작(兩班打作)/ 임보
<너름새>
팔월 복날,
말뚝이 세 놈이 물고 없는 청계천(淸溪川), 다리도 없는 광교(廣橋) 뒷골목 흙바닥 위에서 양반 한 마리 잡아 놓고 한바탕 을러보는디, 머리에는 탈바가지요, 손에는 몽둥이라……
<쇠말뚝이>
귀도 코도 눈도 없는
시러벨 세상 사람들아,
이 내 말씀 들어 보소
거년 그러께 이 양반놈
우리 고장에 내려 와서
앞골, 뒷골, 보리밭, 콩밭
갑순이 을순이 홀려다가
날된장에 장아찌 박듯
새마을 공장에 처넣었다가
술집 갈보집으로 다 팔아 넘긴
비갯살만 디룩디룩
오냐 이놈 잘 만났다!
도리깨춤으로 다듬어 볼까,
조타작으로 두드려 볼까,
덩더꿍 덩더꿍…….
<개말뚝이>
우리 성님 G.N.P. 2천불 짊어지고
사우디로 몸 팔러 떠나던 지난여름
우리 형수 독수공방 무더운 밤에
이 양반놈 오르락내리락
금방망이 하나 주워 어깨 위에 둘러메고
자유도 팔고 애국도 팔고
공갈 잡동산이, 병, 약 다 팔며
십팔 구멍 골프장 돌듯 동네방네 다니면서
사람 간장 다 녹인 이 놈,
오뉴월 장천에 벼락도 안 맞고
용캐도 팔팔 버티었구나,
안심, 등심, 홍두깨, 사태
되는 대로 골골이 발라다가
디딜방아로 재겨나 볼까,
연자맷돌에 갈아나 볼까,
덩더꿍 덩더꿍…….
<양반>
아이고 제발 천지 말뚝이님들
그 무시무시한 춤 좀 멈추시고
이 내 사설 들어 보이소,
이 내 몸도 원래 태생은
양반 중의 양반 경상도 안동 땅에
열두 소슬대문 대감집 사랑채
종년 새끼로 뒷간에서 태어나
성도 족보도 없는 개상놈으로
본 것이라고는 협잡 양반패들뿐이라
그 양반 행세 해보느라고
골골이 굴러다니며 죽을 죄를 지었사오니
그저 목숨만 살려 주시구랴,
꼽사춤으로 얼러나 볼까,
보릿대춤으로 녹여나 볼까,
덩더꿍 덩더꿍…….
<말말뚝이>
네 이놈,
네 애비 뼈다귀가 개뼈다귄지 쇠뼈다귄지는 제처놓고라도
지난해 물 건너 양(梁)서방한테 꾸어다 쓴
만 냥 빚은 어쩔테냐?
강남 아파트 백사장(白沙場)에
강북 마담 샅에 다 밀어 넣고
뉘 삭신으로 갚으려냐?
말뚝이 가즉을 벗기려냐?
쇠뚝이 내장을 훑으려냐?
에따, 이 발싸개나 물어라
도적도 도적도 상도적놈
덕석몰이로 족쳐나 볼까,
오징어포로나 눌러나 볼까,
덩더꿍 덩더꿍…….
<너름새>
이때 남원성 이 도령이 과거에 급제허여 시정을 살피러 다니다가 이 청계천 마당굿을 목도허고 구경꾼들 틈새기로 뿔쑥 솟아나오더니 진헌 전라도 사투리로 한 마디 거들것다,
「촌놈들 참 촌시럽게 놀고자빠졌네. 어서 싸게싸게들 못 돌아가것냐?」
허고 어사또, 양반 볼기짝을 딱 걷어차니 양반놈 떡친 자라 모양 벌렁 나자빠지고 세 말뚝이들 걸음아 날 살려라 혼비백산 도망치는데 신나게 구경하던 바지저고리들도 오금 발발 기어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