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 시선

[스크랩] 임보 시집 <가시연꽃> 에서 1

운수재 2009. 10. 16. 03:21

 

    임보 시인  

    시집 < 가시연꽃 >  

 

책머리에

 

수년 전부터 ‘사단시(四短詩)’라는 이름으로 네 마디 짧은

시험해 보고 있다. 그리하여 그 첫 번째 시집으로

『운주천불』(2000,우이동사람들)을 선보인 바 있다.

이 『가시연꽃』은 그러니까 『운주천불』 이후에 쓴

작품들의 묶음이다.

 

시라는 글은 가능한 한 짧을수록 이상적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줄여 쓰다 보니 미진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이번에도 작품마다의 말미에 사족을 달았다.

읽지 않고 넘어가도 상관없지만 작품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아무쪼록 이 작은 시편들이 읽는 이에게 기쁨의 인연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2008년 

운수재에서 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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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연꽃 / 임보

 

 

탱자나무 울타리 속

과수원집

 

내 어렸을 적

앉은뱅이 가시내처럼

 

풀리지 않는

세상의 아픈 비밀

 

연못 위에 떠 있는

푸른 가시방석 

 

* 가시연꽃은 둥근 잎을 물 위에 띄우고 물속에 숨어 산다.

   가끔 자신의 잎을 뚫고 솟아오른 가시투성이의 꽃대 끝에

   등대의 불빛 같은 작은 보라색 꽃을 무슨 비밀인 듯

   수줍게 내보인다.  

 

 

 

짝사랑 / 임보  

 

내 전생에 너를

얼마나 울렸기에

 

한평생 날 붙들고

잠 못 들게 하는가

 

사랑은 행복이 아니라

형벌일레

 

보이지 않는 끈으로

영혼을 묶는 ― 

 

* 한평생을 두고 못 잊는 사랑을 간직한다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형벌이다. 그러나 베아트리체의 포로가 된 단테는 『신곡(神曲)』

   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어부漁父 / 임보

 

바우는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

낚시로 두 마리만 잡으면 종일 낮잠이다

한 마리는 제놈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편네 몫이다.

 

* 모든 재앙의 근원은 욕심에 있다. 끼니를 때울 음식만 있으면

   족하거늘 사람들은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 제 마음과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다. 자족(自足)을 모르는 자는 늘 불행의 늪에서

   허덕일 뿐이다.  

 

 

교육 무용론 / 임보 

 

일자무식 가난뱅이 박석돌은

여든의 에미를 잃고 석 달을 우는데

 

대학 출신 유식한 황금녀는

여섯 돌 새끼를 두고 가출을 한다 

 

 

 

사랑에 관한 잠언 / 임보 

 

열등생이 없는 과목은

<식사>이고

 

모두가 우등생인 과목은

<사랑>이다

 

학습이 필요 없으므로

사랑을 과외 받는 자는 없다 

 


 

인물人物 / 임보

 

그제는 노산(嶗山)에서 노자를 보았고 

어제는 곡부(曲阜)에서 공자를 만났다 

오늘 오른 것은 태산(泰山)이지만 

결국 산 끝에서 만난 것은 사람들일 뿐

 

* 산동성의 노산에는 노자의 사당이 있고 곡부에는 공자의

  사당이 있다. 태산의 위에도 수많은 인물들의 흔적으로

  요란하다

 

 

  

성인聖人 / 임보

 

노산을 보러 만 리의 창해를 넘고 

곡부를 보러 또 만 리의 광야를 건넜다 

어찌, 기천 년 전에 이미 떠난 노공(老孔)이  

한 선비의 멱살을 잡고 이리 흔든단 말인가?

 

* 유적을 찾는 여행이란 결국 역사적 인물의 탐방에 지나지 않는다.  

 

  what's the catch?, kovallam

 

사람들아 / 임보

 

사람의 집에 가서 삯일을 하지 말고

산과 들녘에 나가 더운 흙일을 해라

 

사람을 너희 집 뜰에 기르지 말고

산과 들녘에 곧은 나무나 심을 일이다 

 

* 인재를 기르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나무를 심는 일이다.

   나무는 배반을 모르기 때문이다. 

 

  back home, sinor

 

빛의 공해 / 임보

 

네온의 불빛에 하늘이 죽어

도시의 아이들은 은하수를 모르고

 

가로등 불빛에 어둠이 죽어

도시의 매미들은 밤에도 울고 

 

* 은하수를 모르는 도시의 아이들이나 어둠을 모르는

   도시의 매미들이나 다 불행한 생명들이다 

 

one fine windy evening, bhaat

 

속도 / 임보 

 

달팽이가 몸으로

풀잎과 풀잎 사이를 길 때

 

다람쥐는 발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뛰고

 

물고기는 지느러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며

 

새들은 날개로

높은 산등성이를 넘어간다

  

* 사물은 다 자신의 속도를 지니고 불편없이 잘 살아간다.

   유독 인간만이 욕심을 부려 제 속도를 넘어서려 한다.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고… 속도를 높이는 것은

   어쩌면 종말을 향해 더 빨리 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sadhu, idar

 

더듬이 / 임보

 

더듬이로 살아가는 개미를 보고

사람들아, 답답하다 비웃지 말라

 

망원경으로 바라다보는 그대의 눈도

우주의 다락에서는 겨우 더듬이일 뿐 

 

* 허불 망원경을 만들어 먼 우주공간을 관측한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광막한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인간이 바라보는 거리도 미미하고 미미할 뿐이다.

 

  Female pilgrim in desert

 

열등인간 / 임보 

 

배우지 않아도

암탉은 알을 잘 낳고

 

가르치지 않아도

까치는 보금자릴 잘 튼다

 

조산원에 누워 있는

만삭의 여인들아

 

청약에 또 낙방한

무주택 서민들아 

 

*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제 새끼도 제 힘으로 못 낳고.

   제 집도 제 손으로 못 짓는 생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camel-keeper, jaisalmer

 

비상飛上 / 임보 

 

높이 나는 새를

부러워 말라

 

결국 그가 깃들일 곳은

지상의 숲이다.

  

 

나무의 고행 / 임보

 

삼복(三伏)에 성장(盛裝)하고 

삼동(三冬)에 벌거벗은 

장립불와(長立不臥) 

평생부동(平生不動)

 

* 어느 고행승도 한 그루 나무의 수행을 따를 수 없다.

 

A Long Way from the Sea

 

설경설경 / 임보

 

문을 열자 

단도직입(單刀直入)이다 

정월  

아침 산

 

* 눈 덮인 아침 산은 칼처럼 다가선다.

 

Shepherd

   

방랑자의 아침 / 임보

 

나를 위해 해가 돋고 

나를 위해 산하가 푸르고 

나를 위해 만물이 싱그럽도다 

나를 위해 세워진 눈부신 제국이여! 

 

* 세상은 그대를 위해 마련된 그대의 영토다. 

   현명한 사람은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방랑자의

   호연지기를 즐긴다. 

 

Untitled

  

시가 뭐냐고? / 임보 

 

우리가 꿈꾸는 것들에 대한

찬양이며

 

우리가 미워하는 것들에 대한

설득이다 

 

* 시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며, 잘못된 것들에 대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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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축시킨 네마디 속 꼿꼿한 선비의 기개  

[이책을 말한다] 김혜경 시인이 추천한 임보 시집   ‘가시연꽃’ 
2009년 08월 14일  충청투데이
요즘에 누가 시집을 읽느냐고, 알아듣지도 못할 독백을 들어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시란 ‘꼭 어려워야하는가,
산문처럼 길어야 하는가’란 화두를 또 떠올리게 된다.
근래의 신춘문예에 응모된 시들을 보자. 보통사람들이 이해하고
즐겨 읽을 수 있는 시들이 과연 몇 편이나 되는지. 나 역시 요즘의
시들을 읽기에 벅차다는 느낌이 들어 시집을 멀리하기도 한다.

얼마 전 임보 강홍기 시인의 ‘가시연꽃’이라는 시집을 받았다.
‘가시연꽃’은 4단시를 기본틀로 쓰인 시들을 엮어 놓은 것이다.

작가는 몇 년 전에 ‘운주천불’이라는 4단 시집을 발표한 적이 있다.
임보 시인은 2007년도에 ‘장닭 설법’이라는 이야기 시를 모아
펴낸 적도 있듯이 시에 있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를 시도해온
작가이다.

4단시는 시 장르의 특성이 압축과 간결을 지향하지만 보다 더
긴축된 구조로 선명한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이다.

현대시에 있어서 김억, 김영랑, 황석우, 김소월 등의 시에서도
단형시를 많이 볼 수 있지만 4단시는 현대에 형성된 것이라기
보다 고대시가나 민요 속에 내재된 형식으로 기승전결이 나타나
있고 리듬감을 잘 살릴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집에 돌아와 ‘가시연꽃’을 읽기 시작하여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수없이 '바로 이게 시야!'라는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08편의 적지 않은 시를 엮었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다.
작가가 늘 "시가 어려울 필요가 있나요?"라고 했던 것처럼
마주앉아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가르치려하는 것도 아니며 교훈을 심어주려
하지도 않는다. 쉽게 읽어 내려가면서 "그렇지"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

‘빨리빨리’는 늘 조급한 마음에 한 박자 쉬어 갈 여유를 만들어
주며 ‘비상’, ‘추락’은 아등바등 세상 일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초라한 일인가를 깨닫게 한다.

‘더듬이’와 ‘우리 속 원숭이의 말’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우주로 시야를 넓혀보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가를 말해준다.
고희의 노시인도 때론 외롭고 서글픈 심사가 있나보다.

‘춘분’에서는 좋아하는 매실주도 봄밤엔 맛이 없고 ‘병’에서는
육신의 아픔으로 잠 못 드는 밤을 노래하기도 했다.

‘나를 망친 여자’편에서 ‘…이승을 떠나서도 내 멱살을 잡고 놓지
않는/ 나를 망친 여자, 아,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여’ 평생 나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 너무나 보고 싶고 부르고 싶은 어머니
라는 표현보다 얼마나 더 절실하게 그리움으로 다가 오는가.
‘어부’를 비롯한 그의 시 곳곳에 작가가 주장하는 선비의 정신
배어 있다.

임보 시인은 시란 영롱한 언어의 사리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그러나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기술자이기 이전에 정신을
다스리는 수행자여야 한다고 했다.
시정신(선비정신)이 시적 장치를 통해 표현되어야 바람직한
시라 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사람들은 시인 임보를 선비 시인이라 부른다.
선비란 세속에 물들지 않으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초연하고
의젓한 기상을 지녀야 한다.
그는 일상에서도 보기드믄 선비이며 그의 시 몇 편만 읽어도
선비의 고고한 기개가 숨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시에 대해 고뇌하는 나와 같은 여물지 못한 시인들을
위해 한 말씀하신다.

‘시가 뭐냐고?’ 우리가 꿈꾸는 것들에 대한/ 찬양이며/
우리가 미워하는 것들에 대한/ 설득이다.// 라고

   

임보 시인

카페    <자연과 시의 이웃들> http://cafe.daum.net/rimpoet

블로그 <시인의 별장> http://blog.daum.net/rimpoet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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