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의 산문들/에세이

사르트f르를 다시 생각하며

운수재 2012. 3. 25. 17:47

 

 

사르트르를 다시 생각하며/        임 보

 

 

 

계간 <한국시학>이 기획특집 <노벨문학상 후보 한국시인>에 본인을 선정했다는 통보와 함께,

<나는 노벨문학상 이렇게 생각한다>는 제하의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보내왔다.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나에게 <한국시학>이 연민 어린 배려를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 글에 호의를 가진 분들이 없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잠시 노벨문학상의 백일몽에 젖어 본다.

 

 

얼마 전에 나는 다음과 같은 약간의 장난기가 담긴 글을 쓴 바 있다.

 

 

누군가가 그분에게 물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가가

한국에 있는가고

 

그분이 대답했다

어찌 없겠느냐고

 

어떤 작가인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말했다

 

노벨상을 주겠다고 해도

받지 않겠다는 사람이라고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이윽고 대답했다

 

자네가 찾아보라고―

                   ― 졸시 「문답(問答)」전문

 

 

상(賞)의 풍토를 빈정대는 글이다.

상을 타기 위해 안달하는 소인배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세상에서 상에 초연한 고고한 인물을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상이란 잘한 일을 칭찬하고 격려하기 위해 만든 좋은 제도다.

그러나 상이 공정하게 시행될 경우에 그렇지,

만일 부당하게 운영된다면 그 상의 기능은 상실될 뿐만 아니라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상금이 많이 딸린 상일수록 운영의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겨우 몇 백만 원 걸린 동네 문학상도 서로 타겠다고 야단인 걸 보면,

노벨상 심사위원쯤 되면 그 고충이 어떠할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명예와 함께 거액의 상금이 딸린 노벨상이야말로 국제적인 로비스트들이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상을 공략할 터이니 말이다.

『닥터 지바고』의 작가 파스테르나크가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그 배후에 미국의 CIA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보도가 최근에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니 노벨상도 공정하게 실행되고 있다고 믿기는 어려울 것 같다.

 

 

1964년 사르트르는 그의 『말』에 노벨문학상이 주어졌을 때 즉시 수상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명예와 부가 동반하는 노벨상의 수상을 스스로 거부한 사람은 지금까지 사르트르밖에 는 없다.

그는 생의 동반자 보봐르에게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상을 준다는 거지? 누가 감히 칸트나 데카르트 괴테에게 상을 준단 말인가?’ 라고 중얼거렸다고 전한다.

이 말은 자신이야말로 세기적인 위대한 인물이므로 누구도 자신의 업적을 감히 평가할 수 없다는 대단한 자만을 담고 있다.

사르트르는 부르주아적인 성향의 노벨상에 대해 평소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라이벌이었던 알베르 카뮈가 자신에 앞서 이미 수상한 것에 대한 불만도 없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사르트르의 노벨상 수상거부는 어떠한 상에도 구속당하려 하지 않은 철저한 자유인, 고고한 지성인의 의기를 느끼게 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수상을 거부한 사르트르의 정신은 어떠한 수상자들의 것보다도 인류사에서 더 빛을 발할지 모른다.

 

 

사르트르의 이런 고집스런 정신은 조선조의 선비들이 지녔던 ‘무자기(毋自欺)’나 ‘신독(愼獨)’의 선비정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같은 분은 10여 차례나 임금으로부터 벼슬길에 오르기를 부름 받았지만 끝내 출사하지 않고 평생 지리산 밑에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지냈다.

남명이 오늘에 있어 만일 그에게 노벨상을 주겠다고 한다면 어떠할까?

아마도 그 역시 거부할 것만 같다.

 

내 은사 유상(愉象) 유공희(柳孔熙, 1922~2003) 선생은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수학한 박학다식한 지성인이었지만 평생 평교사를 고집했다.

시와 수필을 잘 쓰셨으므로 선생의 말년에 제자들이 문집을 만들어 드리려 했지만 생전에 문집을 갖는 일이 부끄럽다고 끝내 거절하셨다.

그리하여 문집 『물 있는 풍경』은 그분이 세상을 뜬 뒤에 출간되는 수밖에 없었다.

사르트를 평소 즐겨 거론했던 유상 선생도 아마 노벨문학상에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상을 쫓아다니는 속된 인물은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상일 경우는 거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적잖은 상금이 딸린 이름 있는 상이라면 아직 거부할 자신이 없다.

세상이 기린 큰 상을 탈 만한 인물이라면 세상의 평판에 초연한 인격자여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나는 아직 멀어도 한참 멀다.

아니,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 것에 대해 은근히 불만을 품고 있는 소인배다.

다음의 내 졸문을 읽어 보면 짐작이 가리라.

 

 

이제껏 세상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죽음이 내 육신을 물어 뭉그러뜨린 뒤에도

나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내가 뿌린 문자의 씨가 한 톨이라도

이 지상에 남아 있는 한

나는 활자의 어두운 창을 열고 부활할 것이다

 

 

그리하여 선량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몰래 파고들어

곤충처럼 수억만 개의 알을 슬 것이다

 

 

어느 날 그들의 육신을 뚫고

하늘을 향해 비상해 오를 수억만 마리의 나방이 떼!

 

 

그날에 내 활자를 지닌 자는 복을 누릴지니

나방이와 더불어 천국에 이르리라.

                                         ― 졸시 「쓸쓸한 비결(秘訣)」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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